새벽에 일어나 학교 교정을 홀로 걷는다. 해가 뜨기 직전이라 대지는 아직 고요하고 하늘의 별과 달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멀리서 상쾌한 새소리가 들려오고, 자박자박 걷는 땅에는 이슬이 맺혀 있다. 늘어서 있는 나무는 도반이 되어준다. 성당과 절과 같은 사원이 신성한 장소라면, 세상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은 신성한 시간이다. 세상에 휩쓸려 정신없이 바빴던 전날의 기억을 잠시 벗어놓고, 내 본성과 차분하게 마주할 수 있는 순결한 시간이다. 누구라도 이 신성한 시간에 깨어 조용히 여유를 가지고 홀로 걷다 보면, 새벽 기운에 스스로 정화되어 평소에 막혀 있던 물음에 대한 답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우리 손에 스마트폰이 분신처럼 따라다니면서 생활이 아주 편리해진 점도 있지만, 반대로 나무와 달과 이슬 맺힌 땅과 만나는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잃어버린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나 e메일을 체크하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식사할 때도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자신도 모르게 자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된다. 창피한 일이지만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내가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스마트폰이 나를 소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중략)

말이 많아질수록 침묵이 그리워진다. 수행을 좀 더 깊게 하고 싶은 소망 하나만 남는다.

혜민 스님

원문보기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42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