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따뜻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명절이 곧 돌아온다. 평소에는 자주 만나지 못하던 친척들이 오랜만에 한지붕 아래에 모여 조상님께 같이 차례도 지내고 어른들께는 세배도 올리면서 밀렸던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런데 그 즐거워야 할 명절날이 안타깝게도 아이에겐 평생 남는 상처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별 생각 없이 툭툭 던진 고모나 삼촌, 할머니의 말들이 비수가 되어 시간이 지나도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따끔따끔 하면서 아픈 상처로 남는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많은 경우에 아이가 본인의 말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알아도 ‘뭐 그럴 수도 있지, 식구들끼리 무슨 상처냐? 다 너 잘되라고, 다 너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아이는 너무도 아픈데도 말이다.

이를 테면 이런 말들이다. 명절 때 밥 먹고 있는 여자 조카애를 보더니 고모가 대뜸 이렇게 말한다. “에휴, 너 살 좀 빼야겠다. 네가 평소에 그렇게 먹으니까 남자가 안 생기는 거야. 너 어렸을 때만 해도 진짜 예뻤는데.” 할머니의 이런 말들도 아프다. “네가 빨리 취직이 되어야 엄마가 덜 힘들 텐데. 부모 등골 좀 그만 빼먹고 얼른 돈 벌어 시집이나 가라.” 큰어머니의 결혼에 관한 말도 아프다. “결혼은 왜 안 하니? 돈은 좀 모았니? 올해는 국수 먹여줄래? 멀쩡한데 왜 결혼을 못해. 눈 좀 낮춰라. 공부만 잘했으면 뭐하니 결혼 잘 못하면 그거 다 헛똑똑이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애가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 보시는 고모부는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재수를 결정한 아이를 보고 이렇게 묻는다. “너, 재수를 왜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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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 미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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