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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씨의 어린시절 꿈은 무엇이었나.

“사람들은 평범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본성이 있다. 나이들 때까지 ‘나는 평범하구나’ 하며 고독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시절 나도 그랬다.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흔히들 꾸는 꿈도 없었다.”

▶그렇다면, 기타리스트의 꿈은 어떻게 갖게 되었나

“중1 때 형의 기타를 보고 몰래 만지는 순간, 전율이 왔다면 거짓말이고(웃음)… 나는 막내라서 형 몰래 기타를 만지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마음껏 만지고 배우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타를 만지는 것 자체에 스릴을 느끼며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러다가 치면 칠수록 늘어나는 기타 실력에 재미, 희열을 느끼게 되면서 점점 빠져들었다.
처음부터 기타리스트가 되고자 했던 게 아니라 이런 우연과 갈망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표현을 빌리면, 꿈이라는 게 구름처럼 엉성하지 않나. 엉성한 별들이 모여 태양계를 이루듯이 그렇게 내 꿈은 만들어진 것 같다. 자신에 대해서 발견하는 것이 꿈이 아닐까.“

▶그런 막연함 가운데 꿈이 구체화 된 계기가 있었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름 기타에 대한 자신감이 붙어 있었고,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때는 어린 나이었기에 그 무대가 얼마나 처참한지 모르고 시작했다. 매일 매일 일당을 받는 일용직 잡부 같은 기분으로 음악을 했다. 일하는 환경에서 폭력을 당하기도 했고, 음악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직접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작정 서울로 와서 디 엔드(THE END)라는 팀을 만들었다. 나름 학교에서 악기 좀 잘 만졌다는 또래들끼리 모여서 밴드를 시작했는데 처음 합주를 해보고 스스로 감동했다. 갓 졸업한 아마추어의 실력이 아니었다. 바로 이때부터다. 희망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뭔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목숨을 걸고 했다. 옆도 안보고 거침없이 앞만 보며 달렸다. 그 길에서 ‘부활’을 만났고, 30년이 흘렀다. 꿈을 이루고, 때론 꿈에 파묻히기도 하면서.“

▶음악을 하기 위해 무작정 상경을 단행한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 용기는 바로 ‘진실’에서 나왔다.(잠시 침묵) 진리는 알기 어렵지만 진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나에겐 기타로서- “나는 얼마나 진실한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 당시 내 경우는 열악한 무대여건이나 매일 기약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들이 진실로 보이지 않았다. 비록 지금 당장 돈을 못 벌더라도 미래의 나를 위해 1~2년 투자하자고 마음먹었다. 나 스스로 진실하고, 사람들과의 진실한 만남이라면 얼마든지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어려움은 나 스스로 자초했던 거다. 그런데 집에서 해주는 밥을 먹는 것보다 기타를 치고 음악을 하는 것이 더 흥미로웠기 때문에 지치고 힘들더라도 그 길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흥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그 길로 가야한다고 항상 말한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면,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많이들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힘들었던 시기를 명확히 몇 년도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극도의 어두움, 암흑의 시기가 있었다. 음악하는 사람이 음악을 못하게 될 때 오는, 사랑을 못 받아서 오는 현상은 죽음과 다르지 않다. 그런 내가 음악을 그만 둬야하나 하는 기로에까지 이르렀었다. 나에게 음악이란 삶이고 그 음악은 사랑과 관심에 비례하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 주니까.
이 때 ‘누군가는 우리의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의 음악을 회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나의, 우리 팀의 한줄기 희망이고 끈이었다. 그러다가 ‘1집’ 앨범을 비롯해 ‘사랑할수록’, ‘네버엔딩스토리’ 같은 노래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럴 땐 한없이 불타오르다가 다시 불씨만 남는 상태로 잦아들고. 무언가를 이룰만 하면 늪에 빠지고, 이룰만하면 또 빠지고. 이런 과정을 30년 동안 겪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암흑의 시기에서도, 불이 잦아든 후에도 불씨는 남아있었다. 밤하늘에 별처럼.“

ktw_01▶그 불씨를 지필 수 있었던 것은.

“불씨가 타오르려면 누군가 불쏘시개로 지펴주든지, 종이를 던져주든지 해야 한다. 난 그 불쏘시개가 바로 관심,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으로 대중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게 없다는 것은 소외다. 그러나 그 소외됨을 누군가가 생각하고 배려해 준다면 그 사람은 존재할 수 있고 버틸 수 있게 된다.”

▶폴제페토와 나눔에 대한 이야기.

“소외됨 자체를 생각해 주는 누군가 있다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음악을 해왔기 때문에 나눔은 나에게 있어서 오래된 내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특출한 사람이 작곡을 하는 게 아니다. 음악이란 모두의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음악을 한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눠야한다는 개념을 잊어서는 안된다. 성공했든 힘들든. 그 생각은 유지되어야한다고 본다.
난 창작을 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나눌 때 비로소 불씨에 불이 지펴질 확률이 쌓인다. 음악으로 내가 무언가 얻었을 때 그걸 나누고 되돌린다는 개념을 갖고 있어야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누구든 무언가를 나누어야 이룰 수 있다. 나누지 않고 모아두는 사람은 ‘왜 난 이루지 못하나’하고 고민하다가 죽는다. 나누려고 하는 개념이 있으면 자기가 왜 성공하는지 모르면서도 성공하게 되는 케이스가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눔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가 있다면.

“나눔은 ‘되돌림의 전(前)’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가지게 된 것을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되돌림은 나눔보다 진화된 것이다.
나눔이란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제도적으로 이런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에 그 힘을 빌리고 있는 것이다. ‘폴제페토’를 통해 악기나 문화를 나누는 이유는 나 스스로 어렸을 때 악기를 접하게 됨으로써 음악을 시작했고 꿈을 품었기 때문에 그 경험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알고 있어서이다. 악기를 접하고 겪어본다면 나와 같이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실천으로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음악에 대한 꿈을 이루며 살아온 지 30년. 향후 30년의 꿈은?

“이 전 30년 동안 단 한 순간도 꿈을 놓은 적이 없다. 아까 말했듯이 좌절의 순간에도 불씨는 살아 있었으니까. 꿈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음악 외에 다른 꿈은 없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도 음악이라는 꿈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있다. 늘 꿈꾸는 것. 삼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지금도 그리고 죽을 때까지도 그럴 것이다.”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어린이 여러분! 저는 내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만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걱정할 게 너무 많아집니다. 생각이 앞서니까요. 지금 현재가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현재에 재미나게 놀고, 궁리하고, 때론 사색하고 때론 고민하면서, 이 모든 것을 다 겪을 수 있도록 오늘을 만끽했으면 좋겠어요!
가십(gossip)! 매 순간 행복하다 죽으면 의미가 없어요, 가슴이 아파봐야 가슴 아픈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까요. 현재를 맞이하는 것을 거저 얻었다 생각하지 말고,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현재를 가십(gossip·흥미거리, 재미난 기사 등)하라고 전하고 싶네요. (그는 펜을 들어 이렇게 썼다 “오늘은 놀자” )

: 송선민(위스타트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