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강일구]

[일러스트=강일구]

가을 안거를 시작한 8월 말과는 다르게 봉암사의 아침저녁은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새벽 3시 예불을 올리려 처소에서 나와 법당 처마 위를 올려다보면 깨끗한 하늘 위로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 반짝인다. 희양산의 청량한 기운과 절 주변을 감싸는 맑은 계곡물 소리는 내 마음을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도록 도와주는 듯하다. 

이번 철에 내가 맡은 소임은 간상장이다. 간상(看床)은 부엌에서 만들어 내준 그날의 여러 음식을 상에 잘 차려서 전체 대중 스님들이 바루공양 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는 소임이다. 간상을 보는 일곱 명 스님들 중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승납(승려가 된 햇수)이 가장 많아 간상장을 맡게 되었다. 다들 성실하고 좋은 분들이라 방선(放禪:좌선하거나 불경 읽는 공부를 마치고 쉬는 일) 후 공양 시간이 되면 서로 즐겁게 맡은 소임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바루공양 상들을 차리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한 선배 스님께서 갑자기 간상장인 나를 부르시더니 부엌 밖에 있는 계단을 간상 팀에서 청소하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일을 왜 간상 팀에 시키는 건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상 준비하는 것도 너무 바쁜데 청소 일까지 시키는 선배 스님이 야속했다. 그리고 분명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들도 하기 싫다는 사실을 분명 아실 텐데 본인이 계단 다니면서 불편했다면 본인 스스로 치우면 되는 것을 왜 바쁜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간상 소임을 다 마치고 나도 똑같이 다른 스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생각하고 혼자 조용히 계단을 쓸었다. 계단을 다 쓰는 데는 사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그냥 하면 되는 것을, 내가 괜한 번뇌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사실 우리 삶이 괴로운 것은 주어진 상황보다는 그 상황을 저항하면서 쏟는 마음의 에너지에서 온다. 우리는 상황에 대한 저항을 하면서 많은 불평불만의 생각들을 만들어내고, 그 생각들의 무게만큼 현재가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성철 큰스님 같은 분들이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하셨던 것은 바로 분별심을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섭수(攝受:자비로운 마음으로 남을 받아들임)하는 법을 증득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공양과 관련해서 또 다른 작은 깨달음의 에피소드가 있다. 봉암사의 경우 아침·점심은 바루공양을 하지만 저녁 공양은 약석(藥石)이라고 해서 적게 드시거나 아예 드시지 않는 스님이 많다. 그러다 보니 저녁은 바닥에 앉아 바루를 펴고 먹는 공양이 아니고 식탁 테이블에 앉아 접시에 적은 양을 담아서 먹는 상 공양으로 대치한다. 

그런데 저녁 상 공양을 하게 되면 승납 순으로 앉기 때문에 나는 어김없이 무표정한 한 스님과 마주 앉곤 했다. 처음엔 그 스님과 편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볼 생각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말을 걸었는데 스님은 그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만 하고 나와 말을 섞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무표정한 그 스님과 아무런 말도 없이 저녁 공양을 하는 것이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저 스님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지, 나에 대해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뭔가가 있는 건지 괜히 좀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무표정의 말 없는 스님과 저녁 공양을 한 지 보름 정도가 지날 무렵 내 안에서 ‘아차’ 하는 깨달음이 도서관에서 일어났다.

 봉암사 내 도서관은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도서관을 찾는 스님은 나 말고 다른 스님 한 분밖에 없었다. 그런데 보름 동안 도서관에서 넓은 책상을 함께 나누어 쓰면서도 나는 그 스님과 한 번의 대화나 눈빛도 나누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녁 먹을 때 무표정의 말 없는 스님의 모습이나 도서관에서 무표정한 내 모습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감정이나 선입견이 있어 그 스님에게 그렇게 무관심하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 보는 원각경이라는 책에 열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즉 내게는 그 스님에 대해 좋다 나쁘다 하는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수행에 들어온 지 3주쯤 지났을까. 저녁 공양할 때 마주 앉은 그 스님과 차를 함께 마실 기회가 우연히 생겼다. 편안히 웃는 얼굴로 나와 대화하는 그 스님을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는 상대가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온갖 추측과 분별을 일으켜 ‘저 사람은 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거야’ 하는 생각을 내고, 심지어는 싫어하는 마음까지 일으키는 것이다. 상대는 그런 생각 자체를 전혀 하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공양을 마치면 계곡을 따라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길을 도반 스님들과 함께 포행을 한다. 쌀쌀한 새벽과는 달리 낮 시간은 아직도 여름 같다. 

혜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