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인간을 이겼다고?

인공지능과 인공지성은 명백히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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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최종 1승 4패의 결과를 두고 우려와 기대, 오해와 진실이 난무했다. 정확하게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진실보다는 오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알파고의 승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았던 기계에 지배당하는 인류의 미래를 연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인공지능과의 대결관계를 전제로 한 혐오로까지 표출되었다. 이에 이번 대국에 대한 국내외의 여러 반응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리해 밝혀진 진실은 무엇인지, 그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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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1

알파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구글은 네이처 논문에서 알파고의 새로운 점을 딥러닝 기법(DCNN)¹과 확률적 트리 서치 알고리즘(MCTS)²의 결합이라고 밝혔다. 또한 알파고는 서로 다른 버전의 알파고 간의 대국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강화 학습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DCNN이나 MCTS는 바둑이나 다른 보드게임용 인공지능에 널

리 적용되어 왔다. 상세한 기술적 내용까지는 알 필요가 없다. 다만 알파고가 인공지능의 궁극적 목표라 여겨지는 일반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과는 거리가 먼, 바둑이라는 게임에 특화된 현존하는 최고의 문제 해결 시스템임은 분명하다. 지금의 알파고는 경우의 수가 한정된 바둑에 특화된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하지만 알파고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의 속도를 가지고 발전할지는 모른다. 구글은 이미 스타크래프트, LOL(League of Legend)과 같은 전략 게임을 다음 과제로 거론했다. 전략 게임 플레이는 바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한대에 가까운 시각정보와 순간적인 추론과 직관에 의한 판단 능력을 전제로 한다. 이는 이미 우리가 아는 알파고의 수준을 뛰어넘는 AI기술을 확보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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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지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특히 서양 문화에서는 지성(intelligence)과 지능(intellect)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성과 지능은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지능은 인간의 좌뇌를 통해 분석하고 연산하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반면 지성은 좌뇌와 우뇌가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총체적인 관점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양육, 연민, 창의력, 직관 등을 관장하는 우뇌와 지능을 관장하는 좌뇌가 합일을 이룬 상태에서 발현되는 것이 지성(intelligence)이다. 의제를 설정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분석, 해결의 방향을 정하는 능력은 지성을 가진 주체만이 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본 알파고는 엄밀히 말하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ect)이지 인공지성(Artificial Intelligence)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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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3

인간이 인공 지능과의 대결에서 패자가 된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2011년 IBM의 자연어 소통 슈퍼컴퓨터 ‘왓슨’이 퀴즈쇼에서 인간을 이겼던 것을 시작으로 소위 인공지능 학습법인 딥러닝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 학습이 가능한 딥러닝 기법을 앞세워 AI는 앞서 얘기한 인간의 좌뇌 영역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왔다. 많이 알려진 인간과의 체스 대결뿐만이 아니다. 전통적 프랑스 와인의 맛과 향을 기계적으로 분석하고 똑같은 성분의 질, 양 조합을 통해 더 뛰어난 와인의 맛을 일관되게 만들어내 세계 와인 품평회를 휩쓴 미국의 나파밸리를 중심으로 한 와인제조산업에 역시 AI가 도입된 지 오래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자동항법장치나 AP통신, LA타임즈, 포브스, 가디언 등에서 이미 활약 중인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사 작성 프로그램 역시 그러하다. 이번 알파고와의 대결 와중에 우스개처럼 회자되었던 현미밥을 더 맛있게 짓는다는 우리집 전기 밥솥인 “oo”역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 모두의 입에 맞는 밥맛을 내는 AI인 것이다.

알파고는 인공지성이 아니다.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앞에서 봤듯이 빅데이터를 기초로 자동 학습하는 인공지능은 과제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독보적인 역량을 발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AI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거리낌없이 노출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물론 우리 눈앞에서 펼쳐진 대국이었기 때문에 받은 감성 충격이 더 컸을 수는 있다. 하지만 외국의 많은 언론과 SNS는 이번 대국을 진일보한 AI 기술과 인간 두뇌와의 흥미로운 대결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처럼 관련 산업의 육성과 인류 문화의 발전에 활용하기 위한 보완, 대비책을 차분히 논했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기술 출현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거쳐 수인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기술의 발전을 인위적으로 막거나 도입을 배재할 수는 없다. 어쩌면 산업사회로의 전환기에 농경만을 고수하며 주도권을 잃어버린 나라들과 같은 전철을 밟아왔다.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간만이 수행 가능했던 전통적인 영역을 축소시킬 것이다. 이는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반면에 그 성과는 인공지능을 관장하는 소수에게 더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능력을 대체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발전, 인간 고유 영역의 축소, 그리고 이로 인한 일자리 구조와 삶의 질 변화를 대비하는 다각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교육, 산업, 문화 등 전방위에 걸친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대응에 실패할지 모른다. 이번 대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미래 사라질 직업

글: 박병헌(위스타트 전략사업부)

 

1) Deep 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의 약자.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의 한 종류. 기계학습/딥러닝 분야의 테크닉으로 복잡한 답안을 능동적으로 찾아낸다.

2) Monte Carlo Tree Search의 약자.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도록 해주는 알고리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