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 “드미트리!!!”, “…….”

2017월 3월. 설레는 마음과 언어소통의 걱정을 안고 달려간 도곡초등학교. 무지개 반 친구들을 만난 첫 날, 20명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기 위한 눈맞춤 출석을 부르고 있을 때였다. 친한 친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소곤소곤 수다 삼매경이었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네”라고 대답한 후 또 수다쟁이들이 되어버렸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드미트리’를 찾기 위해 먼저 출석인원을 점검을 해보니 전원출석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다시한번 “드미트리” 하고 부르자 밤톨처럼 귀여운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누군가에게 생소한 언어로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한다. 그때서야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에 반짝반짝한 눈을 가진 남자아이가 고개를 쭉 내밀어 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얘는 한국말 하나도 못해요~!”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고 주위에 앉은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이구동성으로 친구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아이들도 한국말이 유창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드미트리’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물었고, 혀에 버터를 바른 듯이 굴리고 꼬아 이름을 불러 보아도 아이들은 계속 아니라며 웃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번뜩, 한국에서 ‘드미트리’의 이름으로 살려면 한국식 발음으로 불러도 대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고 또박또박 드!미!트!리!하고 불러주며, 앞으로 이렇게 부르면 본인을 부르는 것임을 알고 대답할 수 있도록 알려주라고 밤톨처럼 귀여운 아이에게 부탁했더니, 또 뭐라고 뭐라고 그들만의 진지한 대화가 오간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번 더 “드미트리” 하고 불렀더니, 활짝 웃으며 “네!”하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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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곡초등학교의 다문화가정의 아이들로 구성된 무지개반의 위스타트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술치료 선생님이다. 이곳엔 몽골, 우즈베키스탄,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중도 입국하여, 한국말과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아이들, 모국어와 영어를 사용하고 한국말을 어려워하는 아이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아이와 똑 같지만 문화적 환경과 외모가 조금 다른 아이들이 함께 있는 진정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오늘의 활동을 한국말로 이야기하면, 사방에서 소곤소곤 이야기꽃이 핀다.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은 스마트폰 통역기를 사용하거나,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동원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빠른 방법은 같은 언어를 쓰는 아이들 중 한국어가 가능한 아이들에게 통역을 부탁하는 것이었는데, 장난스럽게 고개를 흔들며 귀찮은 몸짓을 하면서도 자신의 모국어와 한국어로 친구들을 돕는다. 이렇게 인성교육의 장은 언어소통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미술재료와 주어진 주제에 따라, 자신의 모국어로도 한국어로도 표현하기 힘들었던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나와 자원봉사 선생님들은 어떤 작품이든 소중히 여기고 수용해주며 아이들의 내면부터 존중해 주었고, 모국어든 한국어든 자연스러운 자기표현과 감정을 표현 할 때에는 온 몸과 마음으로 지지해주었다.

이러한 노력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모델링이 되어, 서로의 작품을 칭찬하고 모방하며 웃는 모습, 함께 사용하는 미술도구들을 서로 배려하며 사용하거나 서로 나누어 쓰는 모습, 언어가 통하지 않는 아이들끼리도 몸짓과 눈빛, 그림으로 대화하는 모습, 엄지손가락을 흔들며 서로의 작품을 인정해주는 모습, 한국어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나누며 부끄러움과 뿌듯함을 표현하는 모습, 서로의 생각을 수용하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모습 등으로 나타났다. 언어로 교육시켜 실천시키기엔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들이, 모든 미술치료활동 안에 녹아들어 아이들에게 잔잔히 스며들어 가고 있음이 느껴지는 감사의 현장이었다.

2017년 3월. 프로그램을 시작하던 날, 아이들과 함께 정한 우리들만의 별칭이 있다.

“Miracle(미라클)”

우리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마칠 때 마다 멋진 표정과 액션을 동원하여 “Miracle”을 외쳤고, 이 외침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도곡의 “Miracle(미라클)”들과 여름방학이 지나고, 2017년 9월에 다시 만난다. 또 어떤 감동과 기적이 일어날까? 기대감과 기다림이 커지는 오늘, Miracle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글: 정혜인(위스타트 평택인성센터)
* 이 글은 위스타트 소식지 Vol.7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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