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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엄마는 딸이 수능시험을 마치기가 무섭게 편지 한 통 남겨놓고 집을 나갔다. 딸은 아무도 없는 도시로 가서 뿌리를 내려보려 했지만, 녹록지 않다. 임용 고시에는 떨어졌고, 시험에 붙은 남자친구와는 서먹해졌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견뎌야 했던 감정 노동과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먹는 일도 이젠 지쳤다. 혜원(김태리)이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온 이유다. 다행히, 고향집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엄마가 해주던 특이하면서도 맛난 음식의 추억과 엄마의 냄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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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는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이 오랜 친구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과 교분을 쌓으며 시골에서 한 해 동안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五十嵐大介)의 동명 원작(2008)을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의 임순례 감독이 재해석했다.

실제로 토호쿠의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자급자족하며 먹고 살았던 만화가의 일상을 담은 작품인 만큼 영화는 ‘김태리 셰프의 먹방’을 방불케 한다. 이 젊은 처자는 계란으로 만든 크림 커스터드 위에 설탕을 녹인 얇은 캐러멜을 얹은 크렘 브륄레를 뚝딱 만들어내는 것을 비롯해 쌀가루를 슬슬 뿌려낸 형형색색 시루떡과 밥알에 누룩을 섞어 ‘시큼하고 쿰쿰한 어른의 맛’을 낸 막걸리까지, 숙수의 자세로 웬만한 음식을 척척 해내며 식욕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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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볼거리는 이 땅의 아름다운 4계절이다. 자연 다큐멘터리 못지않은 놀라운 풍광을 잡아낼 수 있던 것은 경기도 양평에서 10년이 넘게 거주하며 텃밭을 일구고 있는 감독의 경험 덕분일 터다. 모기향을 피워놓고 냇가에서 잡은 다슬기를 먹으며 이야기하는 풍경은 여름날의 서정으로 가득하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백로와 부엉이의 실루엣, 청개구리의 움직임도 볼거리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소의 표정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너네도 사는 게 힘들지?”라는 김태리의 푸념에 무심하게 지나치면서도 힐끗 바라보는 그 눈망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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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웃지 않고 피곤하고 똑같이 사는 도시의 삶, 좀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소재가 주를 이루는 요즘, 휴식 같은 영화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을 해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우리시대 청춘의 상처 위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재하가 무심코 던진 말에 한방 얻어맞은 표정이 되는 혜원의 표정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돼?”라는 재하의 말은 감독이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감독은,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 답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이 아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며 끊임없이 두리번거려야 하는 것이다.

혜원의 엄마(문소리)가 남긴 편지에 그 실마리가 있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 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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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혜원은 행복한 청춘이다. 그에겐 자신을 추스르고, 마음의 안식을 얻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고향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직접 기른 작물들로 요리를 해 끼니를 해결하고, 닭을 키워 달걀을 얻고, 감을 깎아 곶감을 말리며 그는 그곳에서 등산화의 끈을 다시 꽉 조여 맬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관 밖으로 나와 다시 현실과 마주친 청춘들은 그런 ‘고향집’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비감해할지도 모른다. 몸뻬바지도 패션이 된 김태리의 하얀 얼굴과 단한 농촌의 실상이 조화롭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영화는 결국 판타지 아니냐고 씁쓸하게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것만은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아시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세상은 원래 끝을 알 수 없는 사막이라는 것을.
‘나만의 작은 숲’이 없다면 멀리 가지 못하고 도중에 쓰러질 것이라는 것을.
지금부터라도 나무를 심기 시작해야 언젠가 숲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글 : 정형모 중앙SUNDAY S매거진 편집장

사진 : 네이버 영화

* 이 글은 위스타트 소식지 Vol.8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