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야 다들 그러했겠지만 이혜경 후원자님도 가난한 농사꾼의 네 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나 어렵게 공부를 마쳤다. 지금 내 자식들에게 하는 것처럼 학원, 끼니 걱정을 안하며 지내기를 소원했다고 한다. 그녀가 어려운 형편에도 대학을 졸업하기까지는 엄마의 힘이 가장 컸다.
아버지의 경제적 공백을 간혹 엄마가 메꾸고 네 아이를 모두 잘 키워냈다.

참으로 가난했고 너무도 어렵던 시절이었다.

이혜경 후원자는 ‘엄마’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올해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전이 어머님 생신이었다.

이제는 아들 둘을 둔 40대 중년의 아줌마이고, 잔소리 많은 학부모이고, 생활고를 함께 책임지고 있는 직장맘이기도 하다.

아주 부유하지는 않지만 남들처럼은 지내게 되었을 때 우연찮게 지하상가를 지나면서 나눔의 기회를 함께하자는 홍보를 보게 되었고,

그때까지도 별 의미 없이 더 가진자들이 기부든 뭐든 남을 돕는거로만 여겼기에 별 신경 안쓰고 홍보 엽서를 받고 가방에 쑤셔 넣곤 잊었었다고 한다.

한참 후에 가방을 정리하다 발견한 기부홍보 엽서를 통해 ‘나도 남을 도울 수가 있구나! 큰 돈은 아니지만 이것들이 모이면 더 큰 도움의 기회가 되겠구나~~’

“다시 나눔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청방법도 간단했고 부담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We Start와 시작되었던 인연…

처음에는 내 이름으로 6개월 정도 기부하다 가족들 이름으로 하는것도 의미가 있어 좋겠구나 여겨 가족 모두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거창한 금액이 아니어도 가능하잖아요. 신청하는 방법이 간편 하기도 하고 연말에 소득공제도 받고 이것보다 더 좋은 기부 있나요? 형제들에게도 맘 놓고 추천하고 있어요”

“기부천사는 아니어도 사회에 자그마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합니다.”

알콜릭 아버지와 할머니 아래 혼자 공부하며 힘들게 공부해서 지금은 어엿한 의대생이 된 아이의 이야기.

마가린으로 한 끼를 대체하고 공부방에 오는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

이혜경 후원자님은 또다시 눈망울에 눈물이 맺힌다.

사내 We Start 홍보대사가 되겠다고 말씀하시는 후원자님!

“해외 뿐 아니라 국내 우리 주변을 봐도 정말 힘든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힘이 들 때 누군가 조금만 손잡아주면 바로 설 수 있는 아이들이 우리 곁에도 참 많잖아요. We Start에서 그런 아이들을 많이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혜경씨는 “얘들아~ 받기만 하면 결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받는 것을 또 사회에 나눠주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길 바란다” 라며 환하게 웃는다.

 

글·사진 : We Start 운동본부 황희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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