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 구필화가 김성애씨

김성애씨가 23일 경기도 광주 자택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씨의 붓은 기타리스트인 남편 강제영씨가 붓에 대나무를 이어붙여 만들어 준 것이다. [광주=김상선 기자]

“눈물 감추려 시작한 그림으로 이제 남의 눈물 닦아줄래요.”

구필화가 김성애(66)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마흔 살이 되던 1987년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한 지 13년째가 되는 해였다. 관절염은 그가 27세 때 찾아왔다. 서른 살이 되자 누우면 일어나지도 못했다. 직장도 그만뒀다. 어머니와 둘이 살며 모든 걸 어머니에게 의지했다. 23일 오후 경기도 광주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84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여러 차례 자살 시도도 했다. 하지만 몸이 온전치 않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어려웠다.

“느닷없이 눈물을 쏟을 때가 많았어요. 자포자기 심정으로 언니 집에 갔다가 조카들에게 눈물을 감추려고 벽에 걸린 예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때 운명처럼 삶이 바뀌었어요.” 마침 등교하던 어린 조카들의 한마디 말 덕분이다. “이모 그림 잘 그려요.” 김씨는 “그때 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구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날부터 그는 26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씨가 처음부터 입으로 그림을 그린 건 아니다. 조카들 앞에서 예수 초상화를 그릴 때만 해도 손으로 그렸다. 그러다 92년 병세가 악화돼 더 이상 붓을 잡을 수 없게 됐다. 김씨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림이었는데, 다시 좌절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던 김씨가 입으로 다시 붓을 ‘잡게’된 건 2년 후 우연히 TV프로그램에 나온 구필화가들을 보고서다. “그때 입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갑자기 손 못 쓴다고 이렇게 넋 놓고 있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TV프로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에게 전화해 그림도구를 다시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날부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스스로 앉지도 못하고 고개도 못 돌릴 만큼 불편한 몸 탓에 하루 2~3시간밖에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96년엔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 입선한 데 이어 ‘세계구족화가협회’에도 가입했다. ‘진짜 화가’의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8년 전엔 지인의 소개로 남편 강제영(64)씨도 만났다. 그는 “남편이 대나무를 직접 깎아 구필용 붓도 만들어 준다. 항상 곁을 지켜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김씨는 이제 어려운 이웃들에게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엔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돕는 시민단체인 ‘위스타트(We Start) 운동본부’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기부했다. 위스타트 운동본부는 그가 기부한 그림과 어려운 형편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어린이 12명의 사연을 엮어 2013년 ‘나눔달력’을 제작했다. 그는 국내외의 불우 아동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김씨는 “정말 힘든 세월을 겪었다. 지금 조금 여유 있을 때, 할 수 있을 때 남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한영익 기자

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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