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누구나 건강한 삶을 희망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에 힘입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던 수많은 질병이 극복되었고, 이에 따라 인간의 평균수명은 증가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인간은 과거에 비해 더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란 질병과 허약함이 없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신체적(physical), 정신적(mental), 사회적(social)으로 안녕(well-being)한 상태’ 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는 병이 없이 튼튼한 몸과 더불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겨낼 수 있고 안정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정신적 건강과, 가정, 학교, 직장, 교우관계 등 사회적으로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해야 비로소 건강하다고 정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간 의학이 발달하고 운동과 식이 조절과 같은 건강 증진 활동이 발전하였으나 이는 주로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치우친 경향이 있습니다. 건강의 요소 중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몸이 아프면 사람은 쉽게 우울해지고, 스트레스가 심하면 통증, 면역력 약화, 수면 장애, 식이 장애 등의 여러 가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의료 수준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한국인의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률이 높다는 데에서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균형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뇌 건강
많은 분들이 뇌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한번 손상된 뇌는 회복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어서 더욱 걱정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미 뇌 손상을 겪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두 번 다시 병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슬퍼하고 절망합니다.
뇌혈관의 문제로 갑작스런 뇌 손상을 입는 뇌졸중 환자들은 이후의 기능적인 회복을 위해 장기간의 재활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병전에 평생 동안 잘 사용하던 몸이 말을 잘 안듣는 경험은 쉽게 우울과 불안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치료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하여 순조로운 재활 치료의 수행을 방해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장기적인 예후를 나쁘게 합니다. 실제로 진료과정에서 지지부진한 재활 성과를 보이던 환자에게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대한 상담과 치료를 병행했을 때, 보다 좋은 예후를 보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신적 건강이 신체적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퇴행성 변화 등에 의해 점진적인 뇌 손상을 받는 치매의 경우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특히,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노인이 많아짐에 따라 노인성 우울증의 유병률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몇 달간의 급격한 인지기능 감소를 호소하며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치매로 진단받은 적이 없던 환자였고, 일반적인 진행 양상에 비해 지나치게 급격히 진행된 증례였음에도 불구하고 MRI를 비롯한 검사에서 특별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분은 배우자와 단 둘이 살다가, 1년전 사별하고 혼자 지낸 이후부터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려왔다고 합니다. 우울증 상담과 치료를 병행한 결과, 인지기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울증은 슬픈 감정, 사고장애, 집중력 부족, 절망감, 활동성 저하 등이 나타나는데, 심한 경우에는 의욕과 집중력이 저하됨에 따라 기억력도 감소합니다. 이런 증상이 장기간 이어지면 마치 치매와 같이 기억력과 인지기능이 감퇴되는 양상이 나타납니다. 특히, 노인성 우울증의 경우 치매와 증상만으로 구별하기가 어려우며 이를 ‘가성치매’라고 합니다. 단, 치매처럼 뇌의 손상을 입는 것이 아니므로, 조기에 진단하여 우울증을 치료해주면 인지기능도 함께 개선되는 병입니다. 따라서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서, 혹시 우울증은 아닌지, 혹은 이미 치매로 진단이 되었더라도 우울증이 동반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위에 예시한 특정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뇌 손상 환자는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정신적인 안녕을 유지하는 것이 기능의 회복과 신체화증상의 감소와 같은 예후의 개선을 위해 중요합니다.

건강한 뇌 만들기
2024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의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로 ‘뇌 썩음(brain rot)’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소셜 미디어에서 저품질 온라인 콘텐츠를 과도하게 소비함으로써 두뇌 기능이 퇴화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평생 동안 겪는 경험, 습관과 환경적인 자극이 뇌의 기능을 결정하는데, 이것을 뇌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위험인자에 노출되었을 때 병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취약성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글자로 얻은 정보를 생각을 통해 장면으로 재조합 해야 하는 책과 비교해 볼 때, 영상과 소리를 통해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고와 학습 기능을 저해하므로, 이는 뇌 건강에 보다 취약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 적절한 운동의 병행, 절주와 금연, 수면 위생 등의 좋은 건강 습관을 유지하고,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 신체 질환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하며, 특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기저질환을 관리해 줘야 합니다. 이미 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중, 말초 혈관 질환 등을 진단받은 분이라면, 이차예방을 위한 약물 복용이 필요하며, 이는 위의 중증 혈관 질환뿐만 아니라 혈관성 치매를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신체적 건강을 유지함과 동시에 일상 생활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울하거나 충격적인 이벤트가 있을 때, 그것에서 최대한 순조롭게 벗어나도록 해야합니다. 적절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 습관은 인지기능의 개선과 스트레스의 감소에 도움이 됩니다.
뇌 건강이라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 길게 늘어놓은 이야기이지만, 사실 너무 당연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뇌 건강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을 예방하고, 만약 뇌 손상을 겪게 되더라도 현명하게 그것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글 | 김유석 건양대학교병원 신경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