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줄리 & 줄리아’(2009, 미국)
감독 노라 에프론
출연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애덤스
역병으로 인한 자가 격리 시대.
방바닥이나 소파에 누워 TV나 스마트폰 보기도 지쳤다면, 소매 걷고 일어나 부엌으로 한번 가보면 어떨까.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젊었든 나이가 좀 들었든 상관없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 한 끼를 대충 때우는 대신, 정식 레시피를 보고 손맛 가득한 요리를 만들어보는 ‘도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뭐, 그런 거 다 귀찮다고? 그런 분들이라면 우선 두 여성의 실화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시길.
여기 두 여자가 있다.
외교관 남편을 따라 1950년대 낯선 파리에 도착한 중년의 사모님, 그리고 갓 결혼해 뉴욕 퀸즈의 피자집 위층으로 이사를 막 마친 2000년대 말단 공무원. 영화는 이렇게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두 여성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둘의 공통점은 요리다.

전화 응대 업무에 지친 공무원 줄리 파웰(에이미 애덤스 역)은 블로거가 되기로 마음먹고 무엇에 대해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요리 연구가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 역)가 남긴 두툼한 프랑스 요리책에 실린 524개의 레시피를 일 년 동안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는다. 눈치 빠른 분들 그리고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아셨겠지만, 책의 저자 줄리아 차일드(Julia Child)는 미국의 전설적인 요리 연구가로 그녀의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역시 요리책의 고전이다. 줄리 파웰(Julie Powell)은 미국의 파워 요리블로거로, 영화는 그녀가 쓴 자전적 소설을 토대로 만들었다.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또 있다. 바로 ‘도전하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파리 생활이 무료해진 줄리아는 모자 만들기 수업을 들어보지만 영 마뜩잖다. 다른 강좌도 마찬가지. 요리학원(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르 꼬르동 블루’다!)도 가보지만 원장이 권한 강좌의 수준은 너무 낮았다.

원장의 비웃음을 간단히 무시하고 프랑스 요리반에 등록한 뒤 줄리아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날 깔보는 남자 수강생들에게 내 능력을 보여주리라! 양파도 제대로 다듬지 못한다며 수모를 겪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와 어마무시한 분량의 양파를 대
상으로 퍼붓는 ‘분노의 칼질’ 장면은 큰 웃음을 자아낸다. 그녀 남편의 반응은 더더욱. 줄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리 블로그를 하기로 마음먹은 뒤, 일 년에 524개의 요리를 선보인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는데, 이것은 하루에 거의 두 개를 해야 하는 스케줄이다. 그것도 일과를 마친 뒤에, 코딱지만 한 부엌에서, 게다가 다 만든 뒤에는 제작 후기까지 일일이 올려야 한다. 얼핏 보아도 무리한 계획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피곤함에 깜빡 잠이 들어 음식을 태워 먹기 일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유 브 갓 메일’(1998) 같은 로맨틱 코메디로 내공을 다져온 노라 에프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이 영화는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사그라지지 않은 감각을 이 영화에서 잔잔하게 풀어놓는다.
사실 요리는 어찌 보면 귀찮은 ‘과정’이다.

시장과 마트를 훑어 싸고 좋은 식재료를 고르고, 이것을 씻고, 굽고, 끓이고, 익히는 과정이란 얼마나 복잡한가. 그럼에도 그 과정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귀한 손님을 위해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선의 ‘결실’을 만들어 내는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갖가지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명성을 얻는 두 여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은 유쾌하다.
긍정의 마인드로 충만한 줄리아와 어떤 어려움에도 지지 않겠다는 끈기를 지닌 줄리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이기도 하다.
🖋️글 | 정형모
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편집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