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구가 작은 남자아이는 엄마 뒤에 숨어 쭈뼛거렸다. 한 아동복지관에서 열린 할로윈 파티, 다른 아이들은 이미 뛰어다니며 노느라 정신없었다. 다들 호박 가면을 쓰고 마법사 옷도 입는데, 유독 그 아이만 몹시 얌전했다. 맘이 쓰여 가만히 다가가 말을 걸었다. “사진 찍어줄까? 같이 놀자!” 아이는 날 힐끔 올려다보더니 대답도 안 하고 고개를 돌렸다. 살짝 무안해져 발걸음을 돌리고픈 맘이 불쑥 솟았다. 어쩐지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거리여서, 모른척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이들이 있었다. 코로나19로 힘든 사각지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빛 같은 사람들’이었다. 대단한 말주변도 없는 그들이 내게 온몸으로 전해준 것들이 있었다. 모두가 거리를 둬야 했던 때, 위험을 마다하고 거릴 좁히려 애썼던 이야기들이다.

지난해 3월이었다. 코로나19 감염이 한창 시작이라 노숙인 무료 급식소가 싹 다 문을 닫았었다. 그만큼 감염이 심각하고 두려울 때였다. 그러나 김하종 신부님은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직접 들은 이유는 이랬다. “우리 가족들(노숙인, 독거노인)은 하루에 한 끼만 먹어요. 식사를 나눠주는 저희까지 닫으면 다들 굶습니다.” 김 신부님은 염치불구하고 봉사자들에게 도와달라 했다. 다들 무서운데 누가 모일까 그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간절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기적이 벌어졌다.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봉사자들이 30~40명씩 찾아왔다. 그들은 묵묵히 마스크를 쓰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다. 650개씩 만들다 780개까지 늘어났다. 소문을 듣고 굶주린 노숙인들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후원이 어렵다기에 찾아가 함께 도시락을 만들며 취재했었다.

오후 4시에 갓 만든 따뜻한 도시락을 들고 성당 앞마당에 갔다. 그곳엔 이미 노숙인들과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었다. 신부님은 도시락을 나눠주기 전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사랑합니다”라고 크게 외쳤다. 그때 봤다. 무표정하고 고단했던 그들의 표정에 미소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을. 그건 다름 아닌 희망이었다.

의심이 직업병이라 괜찮은 옷을 입은 이가 받아갈 땐 노숙인이 맞나 싶어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었다. 그때 김 신부님은 내게 다가와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고, 너는 배가 고픈 불쌍한 사람이라 밥을 주겠다는 게 아닙니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나누는 거예요. 누구든 살면서 어려운 시기를 만날 수 있잖아요. 그때 손을 잡고, 넘어져 있지 말라고, 일어나라고, 같이 걸어갈 수 있다고. 그게 저희 역할이에요. 아름답지 않나요.” 벚꽃잎처럼 보드라운 그 말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머금어졌었다. 그리고 기사가 나간 뒤, 안나의 집 정기 후원자는 120명 넘게 늘었다. 김 신부님은 어느 날 문득 전화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지쳐가는 누군가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일, 신부님 가르침은 그리 기억되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이 됐다.

코로나19는 오래도록 끝날 줄 몰랐다. 한없이 지쳐갈 이들을 떠올렸다. 가게 사장님들이 정말 걱정이었다. 동네만 해도 좋아하던 카페가, 파스타 가게가 한순간에 없어졌다.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뭘까 떠올렸다. 작은 힘이나마 버틸 수 있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 취재를 마치고,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어느 분식집에 갔다. 가게 안이 휑했다. 라면과 김밥을 먹고, 계산대 앞에서 쭈뼛거렸다. 그리고는 대뜸 사장님에게 손편지를 건넸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요즘 김밥이 이렇지 않은데 속이 아주 꽉 차 있어요. 이런 가게는 오래오래 남아야지요.” 부디 고단한 상황에서도 잘 버티어주길, 그런마음으로 나는 계속해서 남대문 시장과 이대 앞 상권까지 골목골목 다니며 응원을 건넸다. 그 기사를 수십만명이 보았으니, 그걸 보고 마음이 움직인 누군가의 동네에도, 작은 온기가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리라.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견디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작은 것들의 힘이라 믿었다. 애써 또 일어나기도 힘든 하루이지만, 그래도 선뜻 다가가 떨어져 가는 용기를 채워주는 일 말이다. 이것 좀 보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린 함께 아니냐고,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다시 앞에서 말했던 할로윈 파티 이야기. 그때 수줍게 홀로 떨어져 있었던 아이에게 난 몇 번이고 더 다가갔었다.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낸 뒤 테이블 밑으로 숨고, 후다닥 달아나며 함께 놀자고 신호를 보냈다. 어떻게 됐을까. 그 아이는 믿기 힘들 정도로 나를 쫓아다니며 놀았다. 10분 만에 우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랬다. 그 아이는 사실 손을 내밀고 싶었으나 뒤로 숨겼던 거였다. 그때 난 먼저 다가가 고사리 같은 아이 손을 꼭 잡았다. 그냥 그럼 되는 거였고, 그 덕분에 모든 게 바뀌었다. 우린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글 | 남형도

머니투데이 디지털컨텐츠부 파트장
네이버 구독자수 1위, 기획 <남기자의 체헐리즘> 연재.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