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끝자락인 겨울이다. 거푸 내린 눈에 볕이든 날인데도 곳곳에 눈 자국이 고스란하다.

2020년 전 세계가 무간지옥 같았던 상황 속에서도 시간은 아랑곳 않고 흘러 마지막 방송 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일 년 전 나는 비긴어게인 해외 답사 중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뉴스를 접하고 부리나케 한국으로 귀국을 해야 했다. 회사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고 했지만 세계적인 팬데믹(pandemic)은 점점 심해졌고, 새 시즌 제작은 무한 연기로 결정이 났다.

「공항 폐쇄, 거리두기, 코호트 격리, KF 마스크」서늘한 단어들이 등장할수록 악화되는 상황. 「말하지 말라, 만지지 말라, 사람을 멀리하라.」 사람 사이에 있어 인간(人間)인데 사람을 멀리하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참 낯설었다. 세상이 낯설었다. 이 「낯설음」이 비긴어게인 한국 편의 시작점이었을까. 본래 비긴어게인의 기획 의도가 「낯선 곳에서 노래하다」인데, 불현 듯 지금처럼 낯선 상황이 어디 있겠는가 싶었다. 한국에서 진행할 때 하나 다른 점이라면 기존에는 가수의 새로운 시작을 담고자 했다면 여기서는 새로 시작하는 대한민국이 주인공이라는 것. 해서 붙여준 이름 「비긴어게인, 코리아!」 그때부터 섭외는 시작되었다. 가수 이소라 님을 비롯한 여러 뮤지션들에게 이런 취지를 전달했고, 고맙게도 다들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하겠다고 흔쾌히 뜻을 모아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선곡 고민. 그 전 해외 편 비긴어게인에서무엇을 발라내고, 무엇을 더해야 할까. 불렀던 노래와 부르지 않은 노래, 부를 수 없었던 노래. 세 가지 기준으로 여러 후보 곡들을 구분해가며 논의 하던 중 제작진과 출연자 모두 동의한 것은 「팝송보다 깊은 교감이 가능한 한국 곡의 비중을 늘리자」였다. 동시에 제작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숙제는 「거리두기」였다.

혹시라도 이러한 시국에 정부의 방역수칙을 어기거나, 혹은 촬영 도중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해 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 안 되니까. 만약 촬영 중 확진자라도 나온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비극이다. 하여 제작진은 난생처음 「관객과 거리두기」라는 공연 방식을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보건복지부에 연락을 취해 이 방식이 괜찮은지 수차례 확인을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거리두기 매트와 링, 자동차극장 버스킹, 텐트 버스킹, 선상(船上) 버스킹」 등이다. 「하늘길이 닫힌 인천 공항」을 시작으로 「대구 동산병원」 등 대한민국 곳곳에서 진행된 촬영. 같은 고통을 겪는 데서 무언의 동지애라도 싹튼 것일까. 한국 촬영을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많은 이들의 「환대」였다.

진심으로 반겨주고 귀하게 노래를 들어준 사람들. 비록 마스크가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감정의 교류가 일렁이던 순간들이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란. 그 때 우리들 사이에 갈마든 감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원망할 대상 없는 상실은 처방할 수 없는 우울함으로 이어진다. 무대도, 객석도 다 사라진 상황에서 방송제작자들이나 뮤지션들 또한 이 우울함에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계속 되는 고통을 지켜보다 보면 근원적인 질문에 더 절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지금 음악을 다루는 방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음악은 한겨울 모닥불처럼 얼어붙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까이 모여들어 맨손바닥을 내보이게 한다. 손바닥에 닿는 음악의 따뜻한 온기는 고스란히 몸 전체로 흘러 스며들고, 사람들은 이내 더운 기운으로 충일됨을 느낀다. 아직 아무 계획도 없지만 새로 제작될 「비긴어게인」은 분명 이러한 음악의 함의(含意)에 더욱 몰두지 않을까 어렴풋이 예상해 본다. 점점 옅어져 가는 겨울. 코로나19로 인한 고통도 이 겨울의 끝이면 사라지길 바라며…


🖋️글 | 송광종

JTBC <비긴어게인>, <히든싱어>, <너의노래는> 등 담당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