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사태와 50여일의 긴 장마로 사람들은 집에 갇혔다.
코로나로 인해 센터에 발이 묶인 아이들은 놀이터를 코앞에 두고도 뛰어나가 놀지 못했다. 아이들은 방역수칙을 열심히 지키면 빨리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규칙처럼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손소독제 바르기를 생활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은 어른들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피해는 우리가 더 보는 것 같아요.” “왜 어른들은 방역수칙을 안 지켜요? 어른들 너무해요.” 점차 지루함을 느껴가는 아이들을 위해 센터 앞마당 화단에 텃밭을 만들었다. 긴급돌봄으로 센터에 올 수밖에 없는 소수의 아이들과 함께 개미를 퇴치하고, 흙을 고르고 거름을 주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4월 29일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센터에 올 수 있는 날을 잡았다.
교실에 묶여 있다가 색다른 활동에 들뜬 아이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그럴싸한 작은 농부의 모습으로 변신을 했다. 도시에서 좀처럼 흙을 만질 수 없는 아이들은 활력이 넘쳐 모종삽을 들고 힘을 써가며 땅을 파고 물을 주어가며 자신들이 고른 식물들을 심었다. 모든 작업이 끝날 때쯤 아이들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혔고, 입에는 함박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자신들이 심은 작물들이 잘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잘 자랄 수 있도록 잘 돌보리라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이후 아이들은 센터에 들고 날 때마다 꾸준히 자신들이 심은 식물에 관심을 가졌다. 잡초를 뽑아주고, 곁가지를 따주고 몇 센티미터가 자랐는지 꽃이 피었는지에 대한 무한 관심으로 관찰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상추, 고추, 가지를 수확하여 집으로 가져가던 날에는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시겠다, 나는 아빠가 잘 드실 것 같아, 난 엄마가 좋아할 거야”라며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한 마디씩 했다. 센터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던 날에는 자신들이 가꾼 야채를 곁들여 먹으며 아이들의 성취감과 만족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난 깻잎 싫어하는데 맛있어! 내가 키워서 그런가봐” “난 가지 싫어하는데 하나 먹어봤어.” “사람들이 연하고 맛있다고 하니까 기분 좋다.” “다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아” 라며 식사하는 내내 아이들은 즐거움을 입에 머금고 있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텃밭과 교실을 오가며 빨갛게 익어가는 유기농 토마토의 수확을 기다렸다.
방울토마토를 수확하는 기쁨으로 거미의 무서움도 이겨냈고, 토마토의 새콤달콤함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그렇게 가을걷이하는 9월까지 다함께 즐길 수는 없었지만 소수의 인원이 돌아가며 텃밭을 놀이터 삼아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들을 달랬다.
그리고 대망의 10월. 우리 교사들은 ‘식물’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육심기’ 활동을 계획했다. 센터 앞마당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한두 명씩 불러내어 활동을 시작했다. 번거롭기는 했지만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다육이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설명을 해 줄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은 신중하게 다육이를 탐색했고, 그에 맞는 화분을 선택했다. 아이들은 며칠에 한 번씩 물을 주어야 하는지, 물 줄 때 얼마만큼 주어야할지 어디에 두고 키워야 하는지 등에 대해 물어오기도 했고, 자신이 심은 다육이의 이름을 써서 붙이며 ‘예쁘다!’란 감탄사를 연발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좋아할 줄 알았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고학년 학생들이 저학년 보다 더 과한 반응을 보여 깜짝 놀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기다려 화분을 하나씩 들고 가며 혹여 놓칠까봐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녀석들의 기특한 모습에 안도감과 생명을 소중히 다루는 아이들에게 고마움마저 들었다. 2020년 위스타트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아이들과 나는 긴 시간 텃밭에 있었다.
땅을 들고 일어나 새싹이 되는 씨앗의 긴 여정을 함께 지켜보며 나와 아이들은 코로나로 인한 불안과 우울 대신, 희망을 선물받았다. 아이들이 심어 교실에 둔 다육이로 인해 교실환경이 달라진 것처럼 아이들의 가정의 분위기도 희망으로 바뀌기를, 우리들의 마음이 다시한번 푸릇해지기를 소망해본다.
🖋️글 | 방용미(위스타트지역아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