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20년 넘게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여행기자 눈에도 팔도강산은 아름답습니다. 여행기자만 아는 비경을 소개하려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살고 있어서입니다. 사람이 있어서, 착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지난해 방영된 tvN 예능 프로그램에 ‘언니네 산지 직송’이 있지요. 염정아 배우를 비롯한 연예인 4명이 경남 남해에서 남해 사람처럼 생활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입니다. 그 방송에서 염정아가 남해까지 왔으니 빵집에 줘야겠다며 식혜를 담그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로 식혜를 빵집에 갖다 줬지요.
그 빵집이 ‘행복 베이커리’입니다. 남해 초등학교 어귀 골목 모퉁이에 들어선 작은 동네 빵집입니다. 염정아가 행복 베이커리를 떠올린 건 이 빵집 주인이 아침마다 등굣길 아이들에게 공짜 빵을 나눠주고 있어서입니다. 빵집 주인 김쌍식(52) 씨가 선행을 시작한 게 2019년이니까 올해로 7년째가 됐네요.

저에게 행복 베이커리는, 여행자로서 자긍심 같은 걸 느끼게 해준 고마운 곳입니다. 이 집을 맨 처음 소개한 주인공이 저이기 때문입니다. 네, 자랑 맞습니다. 2021년 초여름 코로나 사태로 매일매일이 우울한 때였습니다. 다른 취재로 남해를 내려갔다가 지인으로부터 뜻밖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아침마다 학교 가는 애들 붙들고 빵을 나눠주는 이상한 빵집이 있다고요.
이튿날 아침,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춰 빵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침을 목격했습니다. 빵집 주인이 부지런히 빵을 내다 놓으면, 등굣길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빵을 집어 들고 학교로 갔습니다. 빵 갖다 놓느라 바쁜 중에도 빵집 주인이 연신 인사를 건네더군요. “아들, 하나 더 먹어라” “딸, 오늘은 늦었네. 얼른 갖고 가라.” 아이들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등교를 재촉했습니다.
아이들이 등교를 마친 뒤, 김쌍식 대표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어린 시절을 들었습니다.
“집안이 망해 먹을 게 없었어요. 아침을 못 먹고 학교에 가면 늘 배가 고팠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빵집을 열면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꼭 빵을 주겠다고. 가게도 일부러 학교 앞에 얻었어요. 빚을 내 월세 40만 원짜리 빵집을 냈지만, 새벽마다 아이들에게 줄 빵을 먼저 굽습니다.”

이 사연을 고스란히 2021년 6월 30일 자 중앙일보에 보도했습니다. ‘등굣길 공짜 빵 1년 줬다… 월세 살아도 행복한 빵식이 아재’. ‘빵식이 아재’는 행복 베이커리 김쌍식 대표의 별명입니다. 제가 붙여줬지요. 이후로 그는 빵식이 아재로 살고 있습니다.
보도가 나가자 기적과 같은 일이 잇달았습니다. LG그룹에서 빵식이 아재에 ‘LG의인상’을 수여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의인이나 받는 상을 빵식이 아재가 받은 것이지요. 빵식이 아재의 의인상 수상 소식을 보도하자 이번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빵식이 아재를 출연시키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MC 유재석씨가 꼭 모시면 좋겠다고 했다지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빵식이 아재가 출연한 이후 행복 베이커리는 눈에 띄게 손님이 늘었습니다. 이른바 ‘돈쭐’을 당한 것이지요. 전국 방방곡곡의 손님이 일부러 이 외진 빵집까지 찾아와 빵을 사 갔습니다. 염정아 배우가 손수 식혜를 담가 갖다 준 것도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작은 기적인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빵식이 아재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수여하는 ‘어른이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빵식이 아재의 사연을 담은 초코파이 200만 개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행복 베이커리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빵식이 아재는 아침마다 등굣길 아이들에게 줄 빵을 굽고, 행복 베이커리는 전국에서 ‘돈쭐’내러 찾아오는 손님으로 온종일 붐빕니다.
남해에 내려가시면,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 남해 초등학교 어귀 골목 모퉁이의 행복 베이커리를 찾아가 보세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조우하게 되실 겁니다.
🖋️글 | 손민호 중앙일보 레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