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들의 끼니가 진화하기 시작했다
한끼줍쇼는 처음엔 ‘리얼리티’를 위해 만들어졌다. 있는 그대로의 리얼한 순간,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녁 한 끼’를 공략했다. 회의실에서 ‘식구’의 의미도 찾아냈다. 함께 한 끼를 먹는 사람이란 뜻이 바로 ‘음식 식食’ 자에 ‘입 구口’자를 써서 식구란다. 무릎을 탁 쳤다. 식구를 찾자.

그때 감독으로서의 나는 사람들의 끼니를 포착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던 것 같다. 예능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초인종을 누를 때 벌어지는 당황스러운 상황들에 더 집중했다. 프로그램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계속 ‘한 끼’라는 도전이 설득력있게 이어질 수 있을지 앞이 다 보이지 않았다. ‘무섭외’의 촬영방식은 예측이 다 되지 않아 늘 고통스러웠다. 배수진이라고 생각하며 한회 한회 일희일비하며 계절을 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낯선 사람들에게 낯선 주인들이 계속 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었다. 기꺼이 삶의 공간을 열어주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 없는 반찬을 꺼내주고 마음까지 내어주었다. 한시간 남짓동안 낯선 방 안에서 촬영을 마치고 나오면 출연자들은 물론 스태프들까지 뿌듯한 표정이 되어 나왔다.

연원을 알 수 없는 ‘한 끼’의 힘을 가장 가까운 제작진들부터 체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환대를 다 예측하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니었으나, 장기적인 항해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한 끼의 힘들이 쌓여서 이야기를 뼈대로 프로그램이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끼니를 매개로 사람들이 이야기와 삶을 나누기 시작했고, 제작진이 억지로 연출하지 않아도 따뜻함이라는 온기가 만들어졌다. 코미디와 성과주의의 최전선 예능 필드에서 ‘온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사는 이야기’의 힘은 생각보다 커서 사람들을 울리고 돌아보게 했다. 끼니들의 힘을 간과했던 한끼줍쇼를 만나기 이전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다.

맨땅에 헤딩, 한 끼의 큰 그림
첫회의 제목은 ‘맨땅에 헤딩’ 이었다. 정말 무모하게, 아무 계획과 예측도 없이 그저 부딪히자는 마음 하나로 이경규, 강호동 MC들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첫 회를 찍었다. 길에서 만난 어떤 점술가 분은 ‘프로그램이 대박나긴 어려워 보인다’며 걱정의 한마디를 던졌고, 나를 비롯한 귀얇은(?) 스태프들은 다리 힘이 풀린 채 좌절했다. “이거 이런 식으로 하면 괜찮을까?” 수십년 예능 베테랑인 이경규, 강호동씨도 첫 녹화 후 걱정의 한마디를 했다.

첫회는 보기좋게 실패했고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눈앞이 깜깜해지던 그때, 2회 때 처음으로 문을 열어준 성수동의 한 부부는 제작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부부는 생계가 어려워 자선단체나 교회를 전전하며 끼니를 해결해야 하던 시절을 추억했다. 당시에 누군가의 도움 한 번이 굶주리던 그 부부를 살렸고 부부의 꿈을 지켜줬다는 것이다. 지금은 성수동 모처에 예쁜 가정을 꾸리고 직접 회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타인의 도움이 그들을 살려줬던 기억이, 기꺼이 그들의 문을 활짝 열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부부의 도움 덕분에, 우리 프로그램 역시 생명력을 얻었다. 도움이 마치 도미노처럼, 누군가의 생명과 꿈으로 이어지며 전염되고 확장됐다.

그 후로 정말 기적처럼 계속, 다양한 집과 가족들이 다양한 이유와 계기로 문을 열어줬다. 창신동 절벽마을 위의 할머니와 손녀는 초면의 낯선 손님들 앞에 묵은지와 밑반찬들을 꺼내주고 고봉밥을 퍼줬다. 담배 좀 덜 피웠으면 좋겠다는 손녀의 걱정에 빽 하고 짜증을 내는 할머니까지, 마치 우리 가족들처럼 정겨웠다. 청담동에선 운좋게 들어간 반지하 원룸에 살던 청년의 환대를 받았다. 그는 틈틈이 어려운 가정 아이들을 위해 바이올린 레슨 봉사를 다니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지쳐 들어온 낯선 규동 형제를 위해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해줬다. 반지하 방에서 울려퍼진 그때의 그 선율과 떨림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김포에선 흔쾌히 문을 열어준 최초의 동거 커플을 만났다. “남들에게 설명하기에 복잡해서 그렇지, 내 스스로에겐 명확하다”던 당찬 그녀의 설명에 방안에 있던 스태프들 모두가 헉 하고 놀랐던 기억. 변화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한 끼’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났다. 푸드스타일리스트라던 그녀는 토마토 하나도 그냥 내지 않고 올리브오일을 끼얹어 품격을 더했다.

염리동 소금길, 재개발이 정해지고 모두가 떠나 폐허가 된 그 자리에서 뮤지컬 지망생 청년 한 명이 저녁에 장본 꽃게탕을 끓이고 가자미를 굽고 있던 장면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마도 실패할거라고 지레 생각하고 도전을 포기하려던 찰나에 만난 따뜻한, 그것도 정성 가득한 훌륭한 한 끼였다.

겉으로만 봐선 절대 알 수 없는 딱딱한 대문들과 골목길이, 문을 열어주는 순간 어마어마한 이야기와 삶의 다양성으로 채워졌다.사회의 온기는 속이야기를 타고 흘러나왔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끼니였다. 끼니의 힘은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이제 한 끼를 위해 문을 열어준 집이 여든 식구가 넘고, 프로그램을 시작한지 1년이 가까워져 가는 지금, 새로운 진화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과제 앞에 섰다. 아직도 사람들이 묻는다. ‘진짜 리얼이에요?’ 진짜 리얼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연예인이든, 우연히 초인종을 누른 아는 사람들의 집이든 다 리얼이다. 초인종을 누르는 제한시간은 고작 2시간도 안된다. 정말 짧은 시간동안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면 영영 알 수 없던 인연들이다. 의도치않게 촬영을 통해 매번 깨달음을 얻는다. 이건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건네는 고마운 대화였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려 제작일지를 스토리펀딩에 연재하고 모금액을 위스타트에 기부했다. 아이들이 소중한 한끼를 먹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낯선 감격스러움을 느꼈다. 도움은 머무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구나.

처음엔 딱딱하고 차가워 보이던 도시 한복판의 동네가, 문을 열어준 사람들의 환대를 겪고 나면 갑자기 낯설지가 않다. 그 속에서 도움이 도움으로, 인연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기적들을 목격한다. 내가 그동안 너무 기적의 힘을 믿지 않고 살아왔구나 싶다.다만 한가지 원칙은 있다. 포기하면 그 기적까진 가 닿지도 않는다는 것. 초인종을 누르고 물었을 때, 도움이 와 닿고 인연과 환대가 와 닿는다는 것. 그렇게 만난 소중한 한 끼들이 모여 지금의 ‘한끼줍쇼’라는 다양한 풍경의 드라마를 완성하고 있다. 한 끼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니. 오늘도 끼니 거르지 마시길.

방현영 | jtbc예능국 PD
<김국진의현장박치기><내친구의집은어디인가> 연출
<식큐멘터리 한끼줍쇼> 연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