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프랑스 인사말을 만났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독일에 살지만 옆 나라 말은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 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겠는데, 대놓고 맑게 고통을 물어보니 새삼 마음을 두드렸다. 덕분에 매일 기계적으로 꺼내는 인사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타인의 고통을 묻고 공감을 하는 것이 인사의 의미였구나. 인사는 나라마다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안녕(安寧)은 탈 없이 편안한지 묻는 말이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묻는 것과 결이 같다. 문지혁의 소설 《초급 한국어》에는 ‘안녕하세요?’가 무슨 뜻인지 묻는 미국 학생들에게 “Are you in peace?”라고 답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우리는 매일 상대의 평화를 살피는 사람들이다. 앞선 프랑스어 인사가 직접적으로 고통을 물어보니 마치 얼음물에 손을 담근 것처럼 새롭게 느껴졌지만, 실상 우리가 무수히 건네 온 인사들은 온도감이 좀 미지근할 뿐 물이라는 본질은 같다. 국경과 상관없이 우리는 너의 아침과 낮이, 저녁이, 밤이, 아름답고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인사를 나눈다. 네팔에서 온 친구가 알려준 ‘나마스테’는 내 영혼이 당신의 영혼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한 지인은 ”Pura vida!(Pure life!)”란 인사말에 끌려 코스타리카 여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런 인사를 매일 주고받는 사람들의 나라는 어떤지 궁금해서. 이렇게 보면 인사란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말들인지.

나는 독일 남부에 사는데, 이곳엔 특별히 쓰는 인사말이 따로 있다. “Servus(제어부스)!” 우리말 ‘안녕’처럼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쓴다. 그런데 이 말이 참 특이하다. 영어로 노예나 종을 뜻하는 slave, servant의 라틴어 단어에서 왔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노예!”라고 인사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사실을 처음 듣고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런데 가만히 곱씹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제어부스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같은 성서 속 표현에서 기원을 찾는다. 서로에게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당신을 섬기고 살필게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너를 마치 신처럼 여기고 나를 낮추겠다는 마음이 든 인사라니 뭉클하다. 전국 노래자랑에 버금가는 전국 갑질 자랑으로 도배된 사회면 뉴스에 지친 마음에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잘 건네지 않는다. 흉흉한 일이 많다 보니 타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혹여 사건의 씨앗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인사를 나누는 문화권에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낯선 이에게 다정한 인사를 받는 일이 내 기분과 내 하루를 정말로 근사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자전거를 타고 밀밭길을 지나는 아저씨가 싱글벙글 건네는 인사를 받으면 산들바람이 곁을 스쳐간 기분이고, 골목에서 마주친 아이들이 귀여운 입술로 “할로!”하면 내 안에 불이 반짝 켜지는 느낌이다. 사실 같은 독일이라도 도시에선 인사를 건네기 어렵다. 그래도 적어도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나누고 다정한 눈길을 보낸다. 낯선 이에게 보내는 부드러운 미소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에 대한 믿음, 사회 구성원에 대한 기본적 신뢰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국어사전에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人事’라는 한자어를 공유하는 두 단어가 있었는데 엮어보니 묘했다. 하나는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표함.” 다른 하나는 “사람의 일.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 그러므로 인사를 건네는 일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루에 만나는 많은 이들이 내 곁에서 무탈히 지내줌으로써 우리는 평온을 얻는다. 인사를 건네는 일은 이들에 대한 존중이자, 그들의 일상을 향한 응원이다. 알지 못하는 타인이라 해도 – 실은 모르기에 더욱 – 인사를 나누는 일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공동체의 일원인 동료 시민에게 안녕을 묻는 일. 스스로를 낮춰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서로가 고통 없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주 엷은 미소라도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면 어떨까.

 

🖋️글 | 이진민 작가

*이진민,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동양북스)의 일부를 다듬어 새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