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이 몇 년 안 남은 선배 교사가 심각한 모습으로 말했다. “권선생님은 애들이 하는 말 알아들을 수 있어요? 난 도대체 뭐라고 말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뭔 생뚱맞은 말씀을 하시나 했다. 외국인이나 다문화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한국어 쓰는 애들 말을 못알아 듣다니? 그런데 막상 그 말을 듣고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니 이게 그 선생님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뭐라고?”하고 되물어 보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말을 못 알아들어 자녀와 대화가 안된다며 호소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사실 어른들이 ‘현타’, ‘창렬하다’, ‘인실’ 같은 말을 알아듣기란 어렵다. 여기에 모든 단어나 문장을 두글자로 축약하는 요즘 아이들의 화법까지 보태진다. 근본모를 신조어들이 섞인 문장을 다시 두글자로 축약까지 해버리니 어른들로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걸 다시 머리글자로만 쓰는 이른바 ‘급식체’로 바꿔버리면 그야말로 ㅎㄷㄷ 오진다. ‘급식체’란 청소년들이 자기들을 급식충(학교 나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급식밖에 없다는)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던 은어와 문체가 결합된 말로, 굳이 풀어서 설명하면 ‘청소년들끼리만 통하는 독특한 은어나 화법’ 이다. 그 명칭부터 급식체 지린다.

급식체에 대한 어른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 우리말 파괴행위라고 꾸짖는 것. 물론 잘못하면 ‘꼰대질’한다 소리 듣고, 경우에 따라서는 ‘젊꼰’ 소리 들을 수도 있다. 둘, 어설프게 급식체 단어 몇 개 배워와서 젊은 척 흉내내는 것. 이건 뭐, ‘아재’ 소리 듣기 딱 좋다(아이들은 이걸 무료 급식체라고 부른다). 셋, 젊은 세대와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어떻게 하면 ‘급식체’ 쓰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 일단 이게 정답일 것 같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어른들은 아닌 척 하지만, 사실 이런 소위 우리말 파괴 현상이 요즘 아이들에게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가령 19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세대는 ‘담탱(교사)’, ‘사포날(사회가 포기한 날라리)’, ‘깔(여자친구)’, ‘미남(미친남자)’ 같은 ‘은어’를 썼다. 당시에도 기성세대는 이 말들을 못 알아들었고 적대시했다. 심지어 ‘은어를 사용하면 근신처벌’이라는 교칙이 있는 학교도 있었다. 1990년대 중고등학생들은 ‘외계어’를 썼다. ‘외계어’는 어른들이 거의 한 줄도 읽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지독하게 낯설었다.

그런데, ‘은어’, ‘외계어’와 ‘급식체’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은어’, ‘외계어’는 기본적으로 감추기 위한 말이다. 아이들끼리만 이해해야지, 어른들은 되도록 이말의 뜻을 알지 못해야 한다. 반면 ‘급식체’는 어른들 알아듣지 말라고 쓰는 말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속도감 있어서(메신저에 빨리 치기 위해)’ 쓰는 말이다. 급식체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는 시간은 어른들의 학창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빡빡해진 입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작은 쉼터가 되어준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도 감추지 않고 급식체를 쓴다. 마치 좋아하는 노래를 자기들끼리가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마음처럼. 나만 해도 “쌤~ 오늘 수업 핵꿀잼이고요. 쌤 감각 짱, 이거 레알 팩트. 인기 폭발각이네요.”라는 페메를 받았는데, 이거 레알 실화다.

하지만 급식체가 마냥 재미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즐겨쓰는 말들 중에 장애인, 외국인,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 표현들이 적지 않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말들을 재미로 써 버릇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어른으로 자랄 위험이 있다. 급식체를 사용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수 도 있고, 심한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상대방 부모를 비하하는 표현(일명 패드립)이 섞인 급식체를 쓰다가 느닷없이 큰 싸움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의미와 어원을 새겨볼 기회 없이 재미로 급식체를 쓰던 아이들은 상대방이 왜 모욕감을 느끼며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바로 여기서 어른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급식체에 대한 가장 어른스러운 자세는 이를 무작정 꾸짖는 것도, 어설프게 따라하는 것이 아닌, 이해하면서도 잘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은 급식체를 단지 재미있어서 쓰고 있을 뿐이다. 좋아하는 노래, 즐겨하는 놀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그 기원과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고, 혐오표현에 대한 주의 정도만 환기시키는 것이 좋겠다. 어른들과의 소통을 거부한다는 제스처가 분명했던 외계어에 비하면 급식체는 그래도 꽤나 친절한 요즘아이들 문화다.


권재원 | 교육학 박사
권재원(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교육학 박사) 26년째 중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경
향신문, 우리교육 등 각종 매체에 교육에 대한 칼럼들을 발표했으며,
『요즘것들 사전』, 『교사가 말하는 교사, 교사가 꿈꾸는 교사』,
『안녕하세요 학교입니다』, 『학교라는 괴물』 등의 저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