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We Start 아동 쏘스레이넛을 돕기 시작 한 후 성애씨는 We Start 달력에 그림 12점을 기부했다. 인쇄된 We Start 나눔달력을 전달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 자택에서 성애씨를 만났다.

 

강물을 건너 조그마한 주택으로 들어가니 성애씨의 강아지가 먼저 반긴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지만 성애씨는 환한 미소로 We Start 식구들을 반겼다.

 

 

관절염은 그가 27세 때 찾아왔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한 지 13년째가 되는 해였다. 서른 살이 되자 누우면 일어나지도 못했고 직장도 그만뒀다. 어머니와 둘이 살며 모든 걸 어머니에게 의지했다. “오로지 어머니가 사는 희망이었는데 84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누워서 누가 먹여주는 밥만 먹는 인생 살아서 뭐하겠냐’며 그는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질 않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어려웠다.

 

형제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어 오빠의 집에서 나와 무작정 택시를 탔다. 그리고 수녀원에 가서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재정이 좋은 다른 수녀원으로 가라했다. 택시 아저씨가 다시 집으로 데려가 준다 했지만 그냥 도로에서 내렸다. 죽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한 청년이 오더니 “이곳에서 이러고 있으시면 어떡합니까? 당장 주무실 곳이 없으시면 일단 이곳으로 가세요” 라며 성애씨를 근처의 장애 아동 시설로 데려가 주었다. 그곳에서 자신보다 더 심한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생전 처음 보았다. ‘사지가 없는 이 아이도, 말을 할 수 없고 듣지도 못하는 이 아이도 이렇게 웃으며 사는데…’

 

성애씨는 이 아이들을 위해 나중에 무언가라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학창시절 관심이 있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92년 병세가 악화돼 더 이상 붓을 잡을 수 없게 됐다.

 

우연히 성애씨는 TV프로그램에 나온 구필화가들을 보았다.

그날부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하루 2~3시간 밖에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날도 허다했지만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8년 전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을 만났다. 밖에 나갈 수 없는 성애씨를 위해 남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가서 수많은 사진을 찍어온다. 그리고 맘에 드는 사진을 성애씨가 고르도록 한다.

 

“남편이 늘 내 곁에서 함께 해 준다. 내가 짐이 되며 억지로 버텨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행복해서 살아가는 거다.”라고 말하며 성애씨는 환하게 웃는다.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위해 몇 달이 걸릴 때도 있지만 그녀는 희망의 붓을 놓지 않는다. 그는 국내외의 아동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글 : We Start 운동본부 황희정 리포터

사진제공 : 중앙일보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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