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방과 후 교실에 오는 시간, 오후 2시. 9시에 출근해 아이들이 센터에 오기 전까지의 시간이 서류작업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 초등학교 3,4학년의 방과 후 교실을 맡은 후 생긴 업무패턴이다. 아이들이 센터에 와 있을 때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교실에 들어와 가방도 내려놓기 전,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선생님 팔에 매달려 마구 늘어놓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이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가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어느새 6시가 넘어간다.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 휑한 교실에 남아 정리를 하다 보면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미처 끝내지 못한 다른 일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내가 맡고 있는 많은 일들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언제나 한가지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골든타임’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례관리. 목적과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 적용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방과 후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 관찰하는 것도 사례관리가 될 수 있다”는 관장님 말씀에 힘을 얻었고,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부터 실천해 보자고 다짐했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한걸음씩모여 천리를 가듯, 느리더라도 꾸준히 간다면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위스타트 정선마을에 입사를 지원하면서 느꼈던 뜨거운 마음을 기억한다. 본인 역시 탄광촌에서 태어나 어려운 주변 환경에서 자라며 겪었던 힘들었던 점들을 알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공정한 출발선상에 아이들이 설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위스타트 운동의 취지를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달려온 시간이었다.지금까지 비록 1년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위스타트에 근무하면서 각기 다른 아이들의 얼굴처럼 다양한 가정들을 만났다. 타 복지서비스와는 달리 사례관리를 통해 그 가정의 깊은 곳까지 알고, 도움을 주는 시간들을 통해서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맺고, 내 일처럼 고민하고 깊게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모두 다른 어려움과 욕구 속에서 어떤 방법이 가장 최선일까를 고민하는 위스타트 정선마을 선생님들의 마음이 모여 오늘도 정선지역이 더욱 따뜻해지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위스타트 정선마을의 365일은 바쁘게 돌아간다. 신동읍에서 시작한 지 10년, 위스타트 운동이 이 작은 시골마을에 가져왔을 변화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실로 위대할 것이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3,4학년 방과 후 교실을 맡고 있노라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여학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심리전과 갈등 등은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2015년 여름방학의 막바지를 향하고 있던 어느 날, 평소 말투와 행동이 다소 거칠었던 아이로 인해 한 아이가 감정이 상해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화해를 시키기 위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나가버린 친구를 위해 아이들끼리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A4용지에 ‘000야 미안해’라고 써서 한사람씩 들고 교실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어찌나 귀엽고 대견한지 한참을 웃고 서 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작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스스로 성장하고 자라나는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이 더욱 건강하고 밝게 자라나도록 위스타트 정선마을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글 : 나지현(위스타트 정선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