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에는 한국폴리텍 다솜고등학교라는 특별한 학교가 있습니다. 넓은 운동장과 학생들이 모여 있는 본관과 실습장, 기숙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곳이 다른 학교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어, 베트남어, 따갈로그어, 러시아어 등 온갖 외국어와 아직 더듬더듬 서툰 한국어가 사방에서 들려와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없게 합니다.
이곳의 학생들은 모두 다문화 청소년이며, 외국에서 태어난 후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중도 입국 청소년도 절반 이상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문화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1학년 학생들이 처음 들어와 상담실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주제도 ‘학교가 너무 독특해서 적응이 안 돼요’라는 고민입니다. 그래서 1학년 때는 이런 독특한 분위기에 적응하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인성교육과, 서로 문제없이 소통하기 위한 한국어 공부가 필수 과제입니다.
1학년들은 학급별로 8회기에 거쳐 위스타트 인성교육프로그램의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체험합니다. 자신의 얼굴을 음식재료로 독특하게 표현하며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고, 친구의 얼굴을 가면으로 만들면서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서로 반씩 만든 가면을 맞추어가면서 서로 소통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고발하는 기사를 작성해 보기도 합니다.
다문화 학생들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많은 경우 유아기 외국부모의 영향에 따른 한국어 교육 지연, 이로 인한 초등 저학년부터 이어지는 학업성취의 어려움, 피부색이나 외모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따돌림 등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특히 중도입국 청소년의 경우, 가정의 해체와 재결합, 주변을 둘러싼 문화체계의 변화로 인한 문화충격을 함께 겪으며,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를 지나 한국에 입국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일부 다문화 학생들의 가정에서는 자녀의 인성교육에까지 투자할 여력이 없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들과 평등한 관계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친구를 관찰하고, 소통을 통해 서로 소속감을 느끼는 과정 하나하나가 자연적으로 습득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지금이라도 위스타트 인성교육을 1년간 제공하는 것은 학생들의 정서안정과 한국사회 적응, 주변 환경에 대한 신뢰감 회복 및 소속감 획득에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번 1년간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 중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이 있습니다. 처음 입학 당시 다른 친구들에게 섞이지 않고 조용히 말 한 마디 안 꺼내던 학생이었습니다. 어머니가 5차례 이혼과 재혼을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가정에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학생이었습니다. 나를 표현하는 활동에서도 가장 어두운 색의 물감(누텔라 잼)을 많이 사용해 얼굴(식빵) 전체를 까맣게 표현하고 기본적인 눈, 코, 입이 표현되지 않았던 친구입니다.
간신히 눈, 코, 입을 붙여보자는 지도에 감정가가 전혀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만들었으며, 재료를 변형하여 붙여보려는 시도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던 친구가 프로그램에 참여할수록 조금씩 밝아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친구와 반반 나눠서 동물가면을 그리는 활동에서는 열을 내며 짝이 된 친구와 서로 맞추려고 이야기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학생은 때때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고, 그로 인해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걱정을 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입학 당시 우울함을 표현하지도 못하던 무기력한 친구가, 지금은 자신의 기분을 스스로 표현하고 도움을 청합니다. 또한 자신이 기분 좋을 때는 친구들에게 자기 의견을 마음껏 표현합니다. 점차 적극적으로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놓여갑니다.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모두 긍정적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주위와 벽을 쌓는 친구도 있고, 한국어 향상이 더디어 다른 국적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인성교육을 제공해준다면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글: 이재균(다솜인성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