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먹으러 다니는 것도 내 일이다. 먹고 사람을 만나고 그것을 소재로 글을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가 무대가 되기도 한다. 음식의 맛은 혀의 기억에서 사라졌는데, 사람은 또렷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여수의 포장마차 얘기부터 해야겠다. 여수 시장 옆을 흐르는 작은 하천이 있다. 연등천이다. 여수의 산에서 발원하여 여러 하수를 끌고 바다로 나가는 개천이다. 언젠가부터 이 하천 옆에 무허가 포장마차가 생겼다. 먹고살려고 누군가가 ‘리어카’를 끌고 처음 포장마차를 열었다. 하나 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포장마차의 주인이 되었고 여수의 명물이 되었다. 심야에 장사하는 포장마차이니, 얼마나 손님이 거칠었겠는가.

내가 십여 년 전, 이 중 한 곳을 들렀을 때도 그다지 사근사근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무뚝뚝하고 입이 좀 건 아낙이 반기는 둥 마는 둥 손님을 맞았다. 게다가 뜨내기 서울 손님이니 더욱 별 볼 일 없었으리라. 여수시의 상하수도가 정비되면서 연등천도 본래의 목적을 잃어가고 있었다. 물이 마르고 있었던 거다. 어둑한 연등천을 배경으로 환한 불을 켠 포장마차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놀라운 건 주인 아낙의 솜씨였다. 나름 산전수전 겪은 티를 내며 말을 붙이는 서울내기 손님이 뭐 반가웠을까.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받아주면서 요리를 하는데, 시키는 족족 입에 붙는 게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보기에도 서울 고급 일식집 뺨치는 재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섬세함은 떨어질지언정-눈비에 바람 들이치는 포장마차에서 요리가 제대로 되는 게 이상한 일일 터-재료를 다루고 맛을 내는 건 최고의 솜씨였다. 나도 요리사이니, 이건 척하면 알 일이었다. 거대한 삼치가 누워 있었고, 병어와 문어며 조개에다가 여수의 자랑 ‘군평선이’(작은 돔 종류)까지 싱싱한 자태를 뽐내며 투명한 진열장 안에 누워 있었다. 재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두어 가지의 요리법이 바로 튀어나왔고, 앓아서 해달라고 하면 포장마차 뒤에 있는 옹색한 불판에 생선을 척척 얹어 굽거나 날로 썰어냈다. 진미라는 진부한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그 집이 가고 싶어 몇 달이 멀다하고 두어 번을 더 다녔더니 아낙이 말을 열었다. 시집와서보니 따로 벌이가 없는 집안이었다고, 애기 들쳐업고 나왔다고, 원래는 남편이 생계로 시작했는데 자기가 결국 하게 됐다고, 팔자가 드세어서 삼십년째 이 허허벌판에서 날이 덥든 춥든 비린 것 만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번듯한 시설도 없이 그런 맛을 내는 건 손맛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말을 트니, 그처럼 정 깊고 구수한 ‘누님’(이때부터는 호칭이 바뀌었다)도 없었다. 손이 커서 뭘 썰고 구워도 양이 많았다.

세월이 흘렀다. 일 년 전에 다른 소식을 들었다. 포장마차를 철거했다는 거다. 그 누님도 연등천에서 발을 뺐다. 그이는 남편과 함께 다른 동네로 갔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 모른 척하고 위치를 물었다. 예의 투박한 말투였다. “봉산동 게장골목이라고 흐믄 다 알어라.” 따로 전갈 없이 들렀다. 평범한 낮은 건물에 실내포장마차를 열고 있었다. 상호는 뭐라고 했을까.
“41번포장마차”
징그럽게도 그 고난과 고통을 안겨주었던 포장마차의 이름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게 인생이여.”
그러면서 아낙은 웃었다. 이제 추울 때, 바람불고 눈 내릴 때 노심초사하며 생선을 굽고 요리하느라 맘을 졸일 필요가 없다. 가스만 틀면 센 불이 피어오르고, 수도만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온다. 포장마차 시절보다 두 배는 요리가 빨라졌다. 냉장고도 큰 것을 놓고, 개수대도 깨끗하다. 아낙의 표정도 밝아졌다.
“좋죠, 좋지 않겄어라?”
되묻는다. 그게 전부다. 다시 아낙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생선을 손질한다.
“아나, 이것 잡숴봐.”
덕자 병어의 뱃살을 썰어준다. 삼십년 넘는 고생을 하며 굵어진 손마디는 그대로다. 나는 기름진 그 생선을 씹으며 마음 속이 시리고도 뜨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겨우 이 작은 가게 하나 옮겨 들어오는데 삼십년이 넘게 걸리는구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바람찬 연등천에서 온갖 손님을 먹여냈구나. 그이는 이름은 박덕자다. 여사라고 불러도 좋겠다. 박덕자 여사. 부디 오래 그 자리 지키시오. 내 곧 또 가야할테니.

박찬일 | 요리연구가, 칼럼니스트
1965년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소설 전공. 잡지기자로 활동하던 30대 초반 돌연 요리에 흥미를 느껴 유학
을 결심,1998년부터 3년간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했다. 『될 수 있다! 요리사』, 『와인스캔들』,
『최승주와 박찬일의 이탈리아 요리』, 『박찬일의 와인 셀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등 여러권의 책을 지
었으며, 지금은 논현동 ‘누이누이’의 셰프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