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뜻인데 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오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 그렇습니다. 영어로는 ‘패밀리(family)’, 우리 말로는 ‘가족’ 혹은 ‘식구’라고 말할 수 있는 단어 말입니다. ‘가문의 씨줄기’라는 가족(家族)이 다소 딱딱한 어감이라면, ‘같이 밥 먹는 입’이라는 ‘식구(食口)’는 훨씬 살갑고 또 정겹죠.

사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행위란 얼마나 중요한가요.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누군가 열심히 일해서 얻어온 양식을 다같이 나눠 먹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숭고합니다. 식구는 보통 피붙이들을 뜻합니다. 귀하게 얻은 양식을 함께 나눌 사람은 이들 뿐 아니던가요. 하지만 빠른 속도로 개체화, 다원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야말로 외로운 현대인들에게는 피붙이와 다름없다는 해석도 가능해집니다. 요즘 같은 ‘혼밥’시대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영화 ‘심야식당(深夜食堂)’은 이처럼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신세를 토로하며 따뜻한 한 그릇의 음식을 통해 서로 위로받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2007년 일본 만화잡지 ‘빅 코믹 오리지날’에 연재되기 시작한 늦깎이 작가 아베 야로(安倍夜郞·b 1963)의 만화를 동명의 드라마로, 또 스크린으로 옮겼죠. 2009년 시작된 드라마는 심야 시간대에 방송됐음에도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며 제47회 갤럭시상 TV 부문상을 받는 등 커다란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드라마로 주인공인 심야식당의 주인 ‘마스터’를 연기한 코바야시 카오루(小林薫·b 1951)는 대스타의 길에 올라섰지요. 시즌 3까지 나온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2015년 첫 영화가 나온데 이어, 이듬해 ‘심야식당 2’가 나왔습니다.

배경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심야식당입니다.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맥주·사케·일본 소주밖에 없지만, 손님이 먹고 싶거나 원하는 음식을 말하면 마스터가 실력을 발휘해 맛있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소시민들이 잠을 자는 시간에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뭔가 사연이 있겠죠.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진맥진한 직장인을 비롯해 야쿠자·노숙자·게이·스트립 댄서·백수 등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식당을 찾아와 저마다의 사연을 털어놓습니다(특히 ‘꽃미남 배우’ 오다기리 조의 모습은 작품 속에서 단연 눈에 띄네요).

2시간 분량의 영화는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습니다. ‘나폴리탄’, ‘마밥’, ‘카레라이스’인데, 특히 젊은 처자, 타베 미카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밥’ 편은 진정한 용기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한눈에 봐도 집에서 가출한 듯한 젊은 처자는 배낭을 짊어지고 도시 이곳저곳을 떠돌며 눈칫밥을 얻어 먹습니다. 심야식당에도 들러 이것저것 메뉴를 시키더니 마스터가 ‘마밥’을 만들어 내오는 사이 그만 ‘먹튀’를 하고 마는군요.

하지만 그는 다시 심야식당으로 돌아와 마스터에게 고백합니다. 다짜고짜 부엌에 있는 칼들을 반짝반짝하게 갈고 나서는 “돈이 없으니 일을 하는 것으로 식사값을 대신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지요. 마침 손목 통증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던 마스터는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일을 허락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요리에 재주가 있었습니다. 부모 없이 할머니 밑에서 어렵사리 살아온 그녀에게는 그녀가 장례용 음식으로 만들어준 계란말이를 맛있게 먹고 “누군가를 위해 오늘의 계란말이를 또 만들어주렴”이라고 말해준 친구가 있었거든요.

부지런히 마스터를 돕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심야식당의 단골 손님들은 어느새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스터의 손목 부상이 다 낫게되자 약속대로 식당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굳힌 그녀에게 단골 손님이던 요정 사장이 스카우트를 제의합니다. 그녀의 성실하고 부지런한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죠.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정말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도요. 그에게는 ‘먹튀’를 사과하고 일로 보상하겠다는 ‘양심’이 있었고, 자신만의 재주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가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당의 고객들을 자신의 ‘식구’로 만들 수 있었지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과연 그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