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인구가 농민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음식은 집과 마을에서 해결해 먹는 것이었다. 외식은 한양 정도에서나 존재했다. 상업이 태동하던 19세기말인 1890년대 후반까지도 전체 인구의 80%가 농민이었다. 밥(쌀, 조, 보리, 기장 등 낱알을 전부 밥으로 부른다.)을 주식으로 하고 김치와 나물, 된장, 간장을 기본 소스로 한 한국인의 밥상 문화는 20세기 초반까지 대세를 이뤘다. 남부는 쌀을, 북부지역 조를 중심으로 쌀 또는 잡곡이 섞인 밥이 주식(정연식, 조선후기의 주식에 관한 시론)을 먹었는데 평소에는 아침, 저녁 두 끼를 먹었고 농번기처럼 힘을 쓸 때나 낮이 길고 체력 소모가 많은 여름에는 세끼를 먹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 일본에 의한 합병 등으로 농촌의 구조가 변화고 산업화 진행되면서 세끼는 일상화 된다. (정연식, 조선시대의 끼니) 조선시대부터 조선인들은 대식가였다. 조선시대 어른의 곡물섭취량은 오늘날의 세배에 이를 정도였고 양으로서의 식사 문화는 1960년대 빈곤의 마지막 터널까지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 – 한국인의 식생활을 바꾸다.
한국인의 먹거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일제는 자국의 미곡수급상 소비고가 6500만 섬이었으나 생산고는 고작 5800만 섬에 불과하였으므로 부족분 700만 섬을 주로 조선에서 해결했다. 조선 산미증산계획으로 일제는 자국의 부족식량과 군량을 해결했지만 한국 내부적으로는 소비억제, 공출제도 강행 및 만주 등지의 값싼 잡곡 수입으로 한국의 식량 사정은 극히 불량해졌다. (일제강점기의 조선8도 식생활과 끼니 구자옥 외) 더구나 토지조사 사업으로 조선의 농민들은 토지를 약탈 당해 소작인으로 전락하거나, 화전민, (우리 생활 100년 음식, 한복진) 도시 빈민이 된다. 일제는 군인들에게 쇠고기를 통조림으로 제공하게 되는데 쌀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소가 그 대상이 된다. 만주의 전진기지였던 군사 공업 도시 평양에서는 살코기를 발라내고 남은 갈비를 이용한 갈비문화와 군인과 상인들을 위한 불고기 문화가 1920년대 이후에 시작되고 서울에서는 서울 명물인 설렁탕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다. 1920년 경성 내외에 스물다섯 군데(1920년 10월 8일 매일신보) 정도였던 설렁탕집은 1924년에 백군데(1924년 6월 28일 동아일보, 경성부재무당국조사)로 급격하게 늘어난다.저렴한 가격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는 설렁탕은 가격이 저렴한 편이어서 1920년대 이후 경성으로 대거 몰려든 가난한 농민 출신의 노동자들에게 적합한 음식이었다. 설렁탕 깍두기가 유독 단 것도 이 무렵 시작된 문화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이 강대국이 된 이유로 고기와 설탕 소비를 주목한다. 1910년대 이후 조선의 신여성들이 도쿄에서 조리 수업을 받은 후 돌아와 설탕 보급에 앞장서며 설탕은 한민족과 가까운 음식이 된다. 1902년에 젖소 도입 1903년 요크셔 돼지 도입 등으로 도시에서는 서양식 음식들이 선을 보이고 일본의 우동, 오뎅, 소바, 중국의 호떡이 유행한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 일제의 계속되는 전쟁으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굶주림 속에 놓이게 된다.

해방에서 전쟁
해방은 미국에 의해 주도 되면서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주한다. 부족한 식량 때문에 밀가루로 대표되는 미국의 원조 물자는 남한에서 커다란 인기를 얻는다. 북한에서는 체제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본격적인 남 북한 음식의 공존과 변형이 시작된다. 전쟁으로 이런 현상은 가속화되어 함경도의 냉면과 부산의 소면 문화가 결합한 부산의 밀면 같은 문화가 만들어진다. 돼지고기에 익숙한 평안도 실향민들이 남으로 대거 내려오면서 돼지고기 문화가 남한에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돼지고기를 넣은 빈대떡은 이즈음 최고의 술안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전쟁으로 농업생산은 27% 감소하는 등 만성적인 식량 부족 사태가 이어진다. 게다가 일본과 만주에서 돌아온 귀국동포와 북한 실향민들에 베이비붐으로 인한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이런 현상을 심화시킨다. 1955년 미국이 자국의 잉여 농산물을 제공하는 미공법 제480호(PL480)에 의해 56~64년까지 국내 곡물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쌀, 보리, 밀 등이 들어오면서 식량난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서울에는 부족한 쇠고기를 먹기 위한 방편으로 질이 떨어지는 부위를 양념에 재운 육수형 불고기가 탄생한다.

혼분식장려운동과 외식의 본격화
1960년대 전쟁 이후 사회가 안정되고 본격적인 베이비붐과 함께 경제 성장이 시작되면서 되면서 도시형 음식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에 닥친 흉작으로 쌀 부족이 심화되고 공업화, 산업화를 위한 저가의 인력 수급을 위해 저렴한 식량 공급 문제가 당시 군부에서 민간으로 넘어오던 박정희 정권의 사활로 부각된다. 미국의 저렴한 밀과 식량증산정책으로 보리증산이 이루어지면서 혼분식장려운동이 196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63년에 출시 된 삼양라면은 국민식으로 등극한다. 원래 분식을 팔던 중국식당은 짜장면 짬뽕 만두로 대중화되고 한국식 분식인 인스턴트라면과 칼국수, 떡볶이, 순대 등을 파는 분식집이 번성한다. 하지만 쌀 사용의 금지로 쌀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와 전통 식초가 사라지는 아픔을 겪게 된다. 학교 급식에 식빵 햄버거와 우유가 지급되고 빵집들이 생겨나면서 우리의 식생활은 급격한 전환을 맞는다. 음식의 서구화는 고기 문화에서도 생겨난다. 설렁탕이나 곰탕처럼 국물로만 먹던 쇠고기를 구워 먹는 불고기 문화가 대중화된다. 1967년 7월에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쇠고기 등급제가 실시된다. 1965년에 발간된 직업별 전화번호부에는 서울의 한식당 300여개중 39개가 불고기를 파는 집 등록돼 있을 정도로 육수 불고기는 가장 대중적인 외식으로 매김 한다. 1960년대에 양계 산업이 본격화되고 식용유가 대중화되면서 닭고기 문화가 꽃을 피운다. 1970년대 초반에는 서울과 수원 대구 광주 같은 대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마솥 시장통닭 문화가 등장한다. 1970년대 초 일본으로의 돼지고기 지육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남은 돼지 부산물들을 이용한 음식 문화가 도시노동자 빈민 학생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된다. 1970년대 말부터는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가족 단위의 외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인당 GNP가 500불을 넘긴 1975년 이후 육식 문화는 본 괘도에 오른다. 1976년 통일벼로 국내 쌀 자급 100% 달성되자 1977년 1월 1일자로 무미일(無米日)을 해제하면서 공식적인 혼분식장려운동은 종료돼지만 식생활의 서구화는 본격화된다.


올림픽과 외식의 본격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상징하듯 1980년대 들어서면서 외식은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한다. 강남의 본격 개발에 의해 가든형 갈비 문화가 중산층의 외식으로 자리 잡는다. 1981년 9월에는 정육점에서 만 팔던 쇠고기를 포장육으로 하면 슈퍼마켓 축협 등 다른 곳에 서도 팔 수 있게 한다. 튀김통닭은 닭은 찐 뒤 튀겨내는 프라이드 방식이 들어오면서 대세로 자리 잡는다. 닭을 6조각으로 나누어 한 조각에 6백원씩을 주고 파는 탓에 통닭 한 마리를 먹기가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지금까지 불고 있는 치킨집 창업 열풍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거기에 1970년대 말부터 생겨난 맥주 시음장은 프라이드치킨 붐에 상승작용을 한다. 1980년대 초반까지 고급 술에 속했던 맥주는 맥주 제조사들의 ‘맥주는 고급 술이 아니다’라는 슬로건 하에 펼쳐진 맥주 대중화 전술로 막걸리를 물리치고 국민주로 등극하게 된다. 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의 선진 프랜차이즈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프랜차이즈 문화가 자리 잡는다. 1990년대 들어 광우병 등의 공포로 쇠고기 소비는 위축되고 1997년에 농축산물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냉장 삼겹살이 들어오고 때마침 맞은 IMF로 인해 가격이 저렴한 냉동 삼겹살이 국민 육식으로 등극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맛을 추구하는 개인적 취향을 중시하는 소외 미각의 시대가 열린다.'(정혜경)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개인 가구의 증가로 혼밥(혼자 먹는 밥)문화가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고 HMR(반조리음식)과 편의점 음식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실용적인 소비가 자리잡으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외식의 중심 화두로 자리잡는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맛과 더불어 안전이 대두대면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 같은 세계 수준의 가이드 북 서울 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미식 수준에 세계 정상급에 접근하고 있다. 미식은 ‘모던 한식’ 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외식이 거의 없던 한국은 100년을 지나면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변화 속에 있다. 다행인 것은 식재료가 풍부하고 조리법이 다양한 탓에 한국인의 먹거리는 풍상을 겪기는 하고 있지만 풍성해진다는 점이다.

박정배 | 푸드 칼럼니스트
<음식강산>1, 2, 3(한길사) 등 다수의 음식 여행 저서
조선일보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주간동아< 푸드 인더 시티> 등 다수 신문 잡지 연
재, KBS1 <밥상의 전설> SBS Plus <중화대반점> 고정 패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