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점프하는 이유
전영석 | PAPER 칼럼니스트

자폐(自閉)는 자기 세계 안에 갇힌 이들이 바깥 세상과 소통을 거부하는 발달 장애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심각한 오해였다. 그들은 누구보다 타자와의 소통을 갈망하지만, 뇌의 신호가 육체에 가닿지 못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타자와 소통할 때 온전히 자기 존재를 자각할 수 있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면 감정이나 생각을 나눌 수 없기에,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려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0년 전, 자폐증을 앓는 일본의 열세 살 소년 히가시다 나오키가 ‘자신의 언어’로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만의 세상’을 설명하는 책을 썼다. 말을 하지 않는 자폐증 아동의 성장 과정을 묘사한 책 <내가 점프하는 이유> 덕분에 우리는 ‘함께 살고 있지만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자폐아를 오해하고, 두려워하고(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이나 체계를 두려워한다), 소통을 거부했지만, ‘부모’라는 이름의 슬픈 족속들은 자식과의 소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미첼(워쇼스키 감독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원작 소설가)은 자폐아인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서 나오키의 책 <내가 점프하는 이유>를 영어로 번역했다. 영국에 사는 자폐아 ‘조스’의 아버지 ‘제레미’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내 소원 중 하나가 딱 10초 동안이라도 조스 머릿속에 들어가 보는 겁니다.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이해할 수 있게요.” <내가 점프하는 이유>는 자폐아가 타자 혹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며 글로 쓴 ‘자기 마음의 지도’인 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가 점프하는 이유>는 자폐아가 직접 제작한 마음의 지도를 들고 비장애인이 ‘자폐’라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자식을 키우는 친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낳은 아이지만 어떨 때 보면 외계인 같아. 한국말을 하는데도 아예 말이 안 통해.” 그보다 몇 백 배 더 고통스럽겠지만, 그래도 영화 속 자폐아와 부모들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도의 소녀 ‘암릿’은 자신의 하루를 그림으로 그려 엄마에게 알리고, 친구 사이인 ‘에마’와 ‘벤’은 알파벳 글자판을 한 글자씩 찍어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한다. 영화는 자폐에 대한 르포에 그치지 않고 메아리치는 사운드, 겹친 이미지, 극단적 클로즈업, 아웃포커스와 같은 영화적 기법을 통해 자폐아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다큐멘터리 <내가 점프하는 이유>는 영화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의 기술과 기법을 통해 의미 있는 이야기의 주제나 메시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시청각적 이미지들이 어떻게 자폐라는 현상에 관해 궁금해 하는 관객들을 낯선 세계로 안내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줌으로써 영화라는 매체의 효용성과 가능성을 한 뼘 더 확장시킨다. 책의 저자 히가시다 나오키가 밝힌 ‘내가 점프하는 이유’는 점프할 때만큼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감정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폐아가 특정 물건에 집착하거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 역시, 세계의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가해한 세계를 살아가기 위한 자기들 나름의 생존방식인 셈이다.

2017년 환경영화제 상영작 <타짜의 와인>(Sour Grapes, 2016) 이후 궁금했던 제리 로스웰 감독의 최근작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에서 정식 개봉되지 않은 이 영화의 한글 자막은 자폐아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자신의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한 아마추어 번역가에게 자막 번역을 의뢰했고, 좋은 영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일념과 자폐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아마추어 번역가의 순수한 열정 덕분에 제작됐다. 그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거나 틀린 것이 아니다. 대화와 소통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생 본질적으로 고민해야 할 숙제와 같은 것이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책을 썼다는 나오키의 말을 되새기며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자폐아의 세상으로 미지의 여행을 떠나 보자.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 나를 판단하지 말라. 조금 시간을 내어 내 말을 듣고 우리 세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라.”

*본 콘텐츠는 위스타트 소식지 13호에 실린 글입니다.

 


위스타트 소식지 13호
발행일 2023년 3월 21일
발행처 사단법인 위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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