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속 개구리들에게
‘점프를 준비하렴’
강유진 | 학교도서관 리모델링 저자
누구나 그렇다. 준비 없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가족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경험하며 자란다. 자신이 직접 겪은 것이든 책이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겪은 것이든, 경험은 한 사람의 생애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중요한 건,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즐겁고 희망차기보다는 어둡고 불안했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섬세하고 예민한 내게 원치 않았던 학교폭력의 경험은 삶에 대한 희망 대신 끝없는 절망을 불러일으켰다. 피해를 받은 것은 나인데 그것이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생명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온통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학교폭력은 오롯이 내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비슷한 일을 겪었던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나의 전부였던 좁은 우물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와보니,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겪는 대신 그때, 아예 우물 밖으로 탈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폭력을 경험한 후에 내가 할 수 있던 유일한 것은 자신을 스스로 원망하고, 자책하고, 미워하는 것뿐이었다. 이제 막 자아 정체감이 형성되는 시기에 나를 잘 알고 아껴주는 이들이 아니라, 나를 괴롭히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평가로 내 정체성이 정해져 버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타인의 부정적 자극은 몇 배나 더 큰 자기혐오가 되어 돌아왔다. 어른들이 청소년기 아이들의 고민을 향해 “별일 아니야 다 지나가. 나도 다 겪어봤어.”라고 가볍게 말할 때가 있다. 그들은 이미 그 시기를 지났기에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지만, 그 아이들에게 주어진 현실의 세상은 그 순간이 전부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그 아이들이 가진 세계 전부를 파괴한다.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일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의도적으로 다른 아이를 괴롭히거나 왕따를 당하는 등의 신체적, 정신적인 폭력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여전히 많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너도 잘못한 거 아니야?”라는 비난의 말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고 화가 나서 정말 견딜 수가 없다. 어떤 일이든 당할 만해서 당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해 준 이야기는 한 가지다.
각자의 우물에서 사는 어린 올챙이들에게 바란다. 우물 속 세상이 너의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라고. 우물 밖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더 넓은 세계가 있다고. 그러니 그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사실 너희는 올챙이가 아니라 누구보다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개구리라고 말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바깥으로 나오기 전에는 잘 모른다. 그 시간을 지나온 후에야 그곳이 아주 좁은 우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충분히 마음을 읽어주자. 어른들이 아이들의 시선을 넓게 확장할 수 있도록 바꾸어 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어린 올챙이들이 좁디좁은 우물을 벗어나 드넓은 들판과 바다로 점프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함께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
자 얘들아, 얼마 남지 않았어.
우물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갈 그때를 위해, 이제 점프를 준비하렴.
*본 콘텐츠는 위스타트 소식지 13호에 실린 글입니다.
위스타트 소식지 13호
발행일 2023년 3월 21일
발행처 사단법인 위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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