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보다 더 퍽퍽했던
삶을 만나고 오는 일이다
손민호 | 중앙일보 레저팀장

전남 강진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조선 실학의 대명사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다. 다산은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나 오랜 세월 남양주에서 살았다. 죽은 곳도 남양주 고향집이고, 묘소도 고향집 뒤편 언덕에 있다. 하나 다산의 업적, 아니 인생을 말할 때 강진은 빠뜨릴 수 없는 무대다. 다산은 이 후미진 남도 끝자락 갯마을에서 17년 9개월을 살았다. 다시 말하면 강진에서 다산은 18년 유배 생활을 했다.

다산은 서른아홉 살이던 1801년 11월(음력)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를 갔다. 강진에서 18년 세월을 견딘 뒤, 쉰여섯 살이던 1818년 9월 경기도 남양주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고향에서 18년을 더 살고 죽었지만 『목민심서』『경세유표』 같은 주요 저작 대부분이 강진에서 생산됐다. 말하자면 강진은 다산의 사상적 고향이었다. 여기까지는 다산을 읽었다면 대충 읊는 이력이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여태 알려진 유배기와 조금 다르다. 나에게 강진 여행은, 궁지에 몰렸던 한 사람의 일상을 지켜보는 일이어서다. 강진에 가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내팽개쳐진 중년 남자의 절박한 세월과 마주치게 된다. 강진에서 나는 인간 정약용의 눈물과 허기를 지켜보고 돌아온다.

다산이 강진에 도착한 날짜는 1801년 음력 11월 22일이다. 양력으로 하면 12월 중하순. 한겨울이었다. 귀양길의 다산은 몸도 마음도 성치 못했다. 포도청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고문 끝에 천주교를, 아니 가족을 배신했다. 다산은 매형 이승훈과 조카사위 황사영의 죄목을 일러바쳤고, 천주교인 색출법도 알려주었다. 그 대가로 목숨을 부지했다.

강진까지 끌려 내려온 다산은 더이상 임금을 가르치던 대학자가 아니었다. 강진에서 다산은 ‘유언비어 날포로 민심을 흉흉케 한 / 천주학 수괴(곽재구, ‘귤동리 일박’ 부분)’일 따름이었다. 다산이 강진에 도착했을 때 강진 사람들이 보인 행동을 역사는 ‘파문괴장(破門壞墻)’이라는 구절로 증언한다. 문을 부수고 담을 무너뜨리며 달아났다는 뜻이다. 서학쟁이 대역 죄인이 나타났으니 다들 도망치느라 바빴을 테다. 강진에서 다산이 구한 첫 처소는 ‘동문매반가(門賣飯家)’라고 적혀있다. 동문 밖 밥 파는 집. 강진 읍성 동문 밖 주막의 늙은 주모만 만신창이가 된 다산을 받아줬다. 이 주막 행랑채에서 다산은 꼬박 4년을 살았다. 허구한 날 무뢰배들의 술주정에 시달리다 겨우 잠에 들던 시절이었다.

거처는 간신히 구했지만, 먹고 사는 일마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천하의 다산도 밥을 벌어야 했다. 처음에는 주막 마당을 쓸어보기도 했으나 평생 붓만 들었던 양반이 빗자루가 익숙할 리 없었다. 결국 다산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시작했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 『소학(小學)』을 읽혔다. 왕을 가르치던 다산이 갯마을 주막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다산은 평생 500권이 넘는 저작을 남겼다. 『목민심서』처럼 후세가 기리는 역작이 수두룩하나 『아학편훈의(兒學編訓義)』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책도 있다. 『아학편훈의』는 다산이 주막에 빌붙어 연명하던 시절 펴낸 책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다산이 손수 만든 교재다.

다산이 주막에서 가르친 황상, 이청 같은 이들이 훗날 ‘강진 6제자’가 된다. 이들 강진 6제자와 함께 다산은 다산초당에 들어가 역사에 길이 남는 업적을 이룬다. 나는 500권이 넘는다는 다산의 저작 중에서 가장 위대한 저작이 주막 행랑채에서 쓴 저 아동용 교재라고 믿는다. 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어도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했던 의지가 책에 쟁여져 있기 때문이다. 다산은 동문 밖 주막의 행랑채를 ‘사의재(四宜齋)’라고 불렀다. 생각, 용모, 언어, 동작 네 가지를 반듯이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자신을 끊임없이 단속하겠다는 결기가 읽히는 이름이다.

늙은 팽나무 한 그루 외로이 서 있던 주막 터는 현재 번듯하게 복원됐다. 강진 읍내에서 가장 번다한 명소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역 극단 배우들이 다산과 주모의 일화를 재현한 마당극을 공연하고, 주막에선 다산이 즐겨 먹었다는 아욱국도 판다. 강진에 가면, 사의재에 들러 아욱국을 사먹어볼 일이다. 그리고 저 아욱국 삼키며 하루하루를 버텼던 한 남자의 외로웠지만 거룩했던 18년 생활을 되새겨 볼 일이다. 어쩌면 여행은 나보다 더 퍽퍽했던 삶을 만나고 오는 일이다.

*본 콘텐츠는 위스타트 소식지 13호에 실린 글입니다.

 


위스타트 소식지 13호
발행일 2023년 3월 21일
발행처 사단법인 위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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