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의 영어 표현 ‘Enlightenment’를 어원 그대로 이해하면 빛을 밝힘이다. 계몽주의의 시대의 철학자들은 이성의 빛이 무지의 어두움을 내쫓고, 종교의 도그마를 종교적 관용으로, 절대왕정의 억압적 통치를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입각한 정부형태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들은 지금도 중고교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몽테스키외, 볼테르, 디드로, 루소 등이다. 절대왕정하 신민의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빈곤을 주목하던 혁명가들의 열정이 이들 사상가들의 지적 활동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고, 다시 당대 민중의 고통과 욕망, 공포와 희망을 만나 프랑스와 전유럽을 태울 기세로 타오르는 불길이 되니, 그것이 곧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대혁명의 이념은 1789년 국민제헌의회에 의해 채택된 흔히 프랑스 인권선언이라 칭해지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of the Citizen)’이다. 18세기 자유, 평등, 인권의 사상을 집약한 대표적인 문서로 평가되는 이 선언의 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나 그를 유지한다.” (Men are born and remain free and equal in rights.) 이 역사적 문서가 당대의 혁명가들에 의해 작성되고 의회에서 채택될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였던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문서의 제목과 1조에서 ‘인간’이라고 번역된 곳에 남성형 대명사인 Man(프랑스어 homme)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대명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새롭게 수립될 프랑스의 공화정에서 여성은 참정권을 갖지 못했고, 남성과 동일한 재산권을 누릴 수도 없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프랑스 계몽 사상가들, 그리고 같은 시기 미국 헌법을 만들었던 자유와 평등의 주창자들에게 여성과 노예는 시민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도 여기에 주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수학자,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니콜라 드 콩도르세(Nicolas de Condorcet)는1790년 의회에 여성에게 동일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청한다. “피부색이건, 종교이건, 성별이건, 타인의 권리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는 이는 자기 자신의 권리를 내다버리는 것이다”는 그의 지극히 이성적인 주장은 계몽의 시대의 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때, 콩도르세의 배우자였던 소피 드 그루시(Sophie de Grouchy)는 루브르 건너편에서 살롱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들 부부와 같은 클럽의 멤버로 세상사를 토론하던 이 중에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가 있었다. 이 클럽에서 함께 여성인권의 신장들을 이야기하다가 구주는 프랑스 인권선언 2년 후인 1791년 ‘여자와 여성시민의 권리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an and of the Female Citizens)’이라는 팜플렛을 발표한다. 제 1조가 “여자는 자유롭게 태어나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유지한다 (Woman is born free and remains equal to man in rights)”인 이 문서는 프랑스 인권선언과 동일하게 17개의 조항으로 쓰여져, 각 조항에 빠져있던 여성의 권리들을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니까, 여성이 누려야할 동등한 권리의 긍정적 선언임과 동시에, 의회가 채택했던 인권선언은 남성인권선언이라는 풍자이기도 했으며, 여성운동사에 족적을 남길만한 미러링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노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주, 콩도르세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자 했던, 혁명이 배제한 인권은 다수의 시선을 받지 못했다. 콩도르세와 구주는 평등권을 여성, 노예 등에 빠짐없이 적용하자고 했던 점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이들이었으나, 당대 정치 경제의 가장 뜨거운 현안이었던 왕을 처형하고 민중의 의지를 즉각 구현하라는 이슈에서는 급진파가 아니었다. 자코뱅의 급진주의자들이 혁명의 주류가 되었을 때, 부유한 엘리트였고, 지롱드파에 가까웠던 이들은 반혁명으로 몰리고, 구주는 단두대에서, 콩도르세는 감옥에서 생을 마친다.

긴 시간이 흐른 후 현대정치경제학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콩도르세의 학술적 연구 중 ‘콩도르세의 역설’이라는 발견이 있다. 다수결에서는 언제나 세 가지 대안 A, B, C에 대하여 다수가 A를 B보다 좋아하고, B를 C보다 좋아하면서, 동시에 C를 A보다 좋아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주권자가 여럿인 이상, 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으로, 대혁명기 누구보다 급진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의 반대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여성은 투표권을 갖기 시작했고, 프랑스에서는 2차 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에야 여성이 비로소 참정권을 갖는 시민이 된다. 대혁명의 시대에 콩도르세와 구주가 비추고자 한 조명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활활 타올랐던 대혁명의 불길이, 혁명의 주류가 밝히는 ‘주권자의 의지’의 빛이 눈을 부시게 만들어, 그 빛 외에 다른 빛이 비추는 곳을 볼 수 없었던 탓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도 우리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믿는 공동체의 범위 안에서 권리와 공정성을 외친다. 때로는 그 함성이 눈부시게 밝은 불길이 될 때, 배제되는 곳에 비추는 작은 조명을 놓치지 않는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글 | 조석주
정치경제이론 연구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과 시위와 투표를 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민주주의에서의 정치경쟁과 정치제도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