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갑자기 닥친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면 마음의 카메라가 슬로 모션으로 그 장면들을 찰칵 찰칵 천천히 찍어 놓는다. 평소의 기억은 망각의 강으로 잘 흘려 보내지만, 그렇게 슬로 모션으로 찍어 놓은 장면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미국인들의 경우에는 2001년 가을에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을 때 어디서 그 뉴스를 처음 접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가 많다. 그 당시 뉴욕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는 교내 텔레비전 화면으로 그 장면을 목격했다. 나 또한 충격으로 망연자실했던 그 순간이 슬로 모션으로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매일같이 호소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연이은 다른 테러가 미국 내에서 또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공포에 휩싸여 기존 삶의 평정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일상생활이 마비되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이야말로 바로 테러리스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말에 용기를 내어 많은 뉴욕 시민이 내면의 공포에 휩쓸리지 않고 하루하루 평소와 다르지 않게 차분하게 생활하려 노력하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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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 미 햄프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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