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회를 이끄는 어릴 적 책읽기의 힘

취약계층 아동이 학교 입학 후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언어 환경이다. 학교 언어는 대부분 문어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선생님의 설명이 말로 이어지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구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는 보충 설명이거나 잠시의 휴식 때 사용하는 언어이다. 문어는 철자를 음성으로 옮겨야 하는 유창성도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상대방의 표정이나 다른 단서들이 없는데도 오롯이 혼자서 쓰여진 글의 의미를 구성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아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는 이야기개념을 형성하기 때문에 철자로 쓰여진 글의 의미를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낼 수 있는 가시화가 조금씩 가능하다. 이야기개념이 형성되면 자신이 쓰는 글도 타인에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읽기와 쓰기가 서로 연계된 부분이다. 이러한 능력은 어떻게 발달되는가? 모든 아동이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동일한 출발선에서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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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후 6~7개월 경 영아들이 혼자 앉기와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시작할 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영아에게 그림책을 제공한다. 그림책은 대부분 사각형 모양으로 따분하지만 손가락으로 각 페이지를 움직일 수가 있어 조금 흥미롭기도 하다. 이후 몇 개월이 지나면서 영아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림책을 잡을 때마다 부모가 항시 똑같은 말을 건넨다는 것이다. 아이는 책을 잡은 후에 부모의 얼굴을 쳐다본다. 또 같은 말을 하려나? 그건 무슨 의미일까? 물론 처음에는 잘 알 수 없지만 경험이 반복되면서 그림책을 사이에 두고 함께 나누는 대화는 증가하기 시작한다. 이런 즐거움을 경험한 아이는 생후 3년 동안 어려운 문어를 접하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게 된다. 즐겨 읽는 책 목록도 생기고 외출을 할 때에는 몇 권의 그림책을 챙겨나가기도 한다. 잠을 자기 전이나 쉴 때 부모와 십 여 분간 함께 상상 여행도 떠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한다. 모두 정신적 경험이며 문어로 이루어진 훌륭한 환경이다. 영아가 옹알이를 수없이 할 때 부모가 이에 화답해 주어야만 첫 단어의 표현이 이루어지듯이 그림책을 가지고 문어 옹알이를 수없이 할 때 성인 중 누군가가 이에 즐겁게 동참해 주어야만 아이는 문어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고 점차 더 어려운 인쇄물개념, 읽기이해력 등을 습득해 간다. 어느 날 철자를 가르쳐서 읽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짧은 수업이나 공부로 잘 습득되지 않는다. 읽기와 쓰기인 문어도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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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 아동을 둘러싼 문어 경험과 환경은 그리 풍부하지 못하고 결핍이 되어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연구결과에서 밝혀졌다. 미국 언론에서 보면 유명인들이 영유아 기관을 방문하였다는 기사에 실리는 사진은 대부분 아이들 앞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장면이다. 그만큼 사회 전체가 어린시기의 읽기 경험을 가치 있게 여기고, 이후 학교 적응과 한 아이의 미래에 결정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의 아이들에게도 그림책 읽기의 힘을 누적하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사회적 노력도 필요하다. 위스타트가 영유아중재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작할 때 그림책은 주요한 프로그램 요소였다. 학원 또는 학습지가 아닌 성인과의 주고받는 대화에서 문어를 접하도록 우수한 그림책을 가정에 지속적으로 보내왔다. 부모들에게는 어떻게 읽어주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그 결과 2년 정도 위스타트 그림책을 받은 아이들은 학교 적응이 잘되었다는 연구결과도 밝혔고 선진국의 많은 나라들도 초기 그림책읽기 효과 연구 결과를 수없이 내놓고 있다. 이제 아이들을 만나면 함께 그림책을 읽는 귀한 경험을 나누면 어떨까? 그렇다면 아이는 주도적으로 책을 선택하여 스스로 책을 접하려 할 것이다. 학교 적응도 쉬워질 것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모습이다.

글: 김명순 교수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