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불편함이 필요한 시기
내가 사는 아파트는 매주 수요일이 분리수거 하는 날이다. 수요일만 되면 이웃들은 양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분리수거 장으로 향한다. 밤에는 분리수거 장에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산처럼 쌓인다.
‘매주 수요일은 분리수거의 날’ 규칙에 익숙해지자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분리수거 직전까지 일주일 간 내가 모은 쓰레기의 양이었다. 짐작은 했지만 적지 않은 양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 근무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자잘한 쓰레기가 훨씬 더 늘었다. 일에 치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코로나 시국이 워낙 엄중하니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장을 봤다. ‘어쩔 수 없이’란 말은 핑계가 될 수 있을까? 수요일 밤마다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 장에 쌓이는 쓰레기 산을 보며 나는 속으로 되묻곤 했다. 마음의 불편함도 그렇게 쌓여갔다.
이 불편한 감정은 코로나 사태와 함께 더 깊어졌다. 어느덧 2022년. 코로나19와 햇수로 3년째 함께할 줄은 몰랐다. 그 동안 당연했던 일상은 당연한 게 아닌 게 됐고, 나는 내 생활 습관과 주위 환경에 대해 전보다 더 자주 돌아봤다. 결정적으로 코로나는 ‘내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행위가 내가 사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 계기였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대유행 하기 시작했을 때쯤, ‘원헬스(One-Health)’라는 개념을 우연히 기사와 책을 통해 접한 뒤부터였다.
원헬스는 인간과 동물, 생태계의 건강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질병을 이해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질병이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동물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또한 통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보건·의료 분야 학술 용어다. 나는 이 용어가 현재 우리의 상황을 꿰뚫는 가장 시의성 있으면서도 직관적인 용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간은 더 많은 생활 터전과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그만큼의 더 많은 야생 구역을 침범해왔다. 자연스럽게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점은 늘어나게 됐다. 접점이 많아진다는 건 야생동물 안에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더 쉽게 옮겨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코로나19 이전에도 메르스, 신종플루 등 동물과 인간이 상호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은 주기적으로 발생해왔다.
인간이 활동 영역을 넓혀 가며 발생시킨 탄소 배출량은 기후변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지난해 활동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동물·인간·환경 간의 근본적인 연관성’에 관심을 갖게 됐고 세계화와 기후변화로 미래에는 코로나19보다 더 새롭고, 심각한 신종 감염병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개인이나 기업, 단체에서 배출한 탄소를 줄이거나 재 흡수할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 정책이 주요 키워드다.
어쩌면 모든 것이 너무 과잉인 시대에 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 늘어난 생활 쓰레기에 대해 취재한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자는 경기도의 한 지자체 쓰레기 선별장을 찾아갔는데, 쓰레기를 가득 실은 1.5t 트럭이 하루에만 10~15대가 선별장을 오갔다고 했다. 이중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있거나 같은 플라스틱이어도 성분이 달라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가 태반이었다. 이런 쓰레기들은 땅에 묻거나 태워야 하는데 그마저도 썩는데 수백 년이 걸리고 매립할 공간은 줄어만 가는 실정이다.
며칠 전에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취재한 동료 기자와도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100% 사료나 퇴비, 바이오가스 등으로 재활용 된다고 했다. 문제는 재활용을 해도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무언가’에 대한 수요 자체가 별로 크지 않다는 거였다. 재활용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도 문제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묻자 동료는 “고민의 시작점은 ‘쓰레기를 만든 후’가 아닌 ‘쓰레기를 만들기 전’이 돼야 해. 일단 쓰레기 배출량부터 줄여야지”라고 답했다.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한 결론은 하나로 모아진다. 무언가를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다. ‘가치소비’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고, 주변을 보면 요즘 완전하진 않더라도 비건을 지향하거나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된 지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관심의 계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은 자신이 쓰레기를 덜 만들고,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게 조금이나마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길이라고 여긴다. 인간의 크고 작은 행동이 타인을 넘어 비인간 동물과 환경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거라는 그 ‘연결감’을 믿어서다. 그 감각 안에서 어느 정도는 마음의 불편함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변화의 가능성은 거기서부터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