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을 향한 점프
송민교 | JTBC 아나운서
“안녕하세요. JTBC 공채 1기 아나운서 송민교입니다.”
이번 호의 주제를 듣고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 인사를 하기까지 정말 많이 넘어지고 깨졌다 다시 일어나서 뛰기를 반복했기에 그랬나 봅니다.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내 20대는 새만금 갯벌을 닮았다”고 표현할 정도니까요. 어느덧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지금부터 그 시절 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시작은, 뉴스에서 어려운 사회문제들을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앵커의 모습을 보고 생긴 관심과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학교를 다니면서는 방송반 활동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전학을 갔거나, 다른 특별활동 부서로 차출됐거나, 학교에 아예 방송반이 없거나 등의 이유로 방송에 대한 갈증을 풀 기회 자체가 없었죠. 하고 싶은 일을 경험하지 못 했기에 아나운서라는 꿈, 방송을 향한 갈망이 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방송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고 싶어서 대학교도 휴학 한번 하지 않고 4년을 쭉 다녔습니다. 여담인데, 부모님께서 초등학교 때 ‘부모가 희망하는 아이의 직업란’에 아나운서라고 쓰기도 하셨는데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요. 저는 부모님께서도 바라시는 직업이라 어린 마음에 관심이 더 가기도 했는데…
그렇게 10대 소녀 시절부터 품었던 꿈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한 건 대학교 4학년 말부터였습니다. 그때부터 2011년 JTBC에 입사하기 전까지, 6년 남짓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크게든 작게든 방송을 하고 있었고, 시험도 참 많이 봤습니다. 첫 관문에서부터 떨어진 적도 있었고, 합격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 한 적도 있었죠. 주저앉기와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시험을 준비하는 건 목표를 향한 노력의 산물이었기에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습니다. 오히려, 시험을 보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과 원치 않는 결과를 마주한 순간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강도는 가고 싶은 방송국의 시험일수록 배가가 되었죠. 숨을 제대로 쉬지 못 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을 찾지 못 할 때… 처음 한두번은 ‘그래,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됐으니까…’라며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그게 반복되니 ‘내가 애초에 가능성도 없는 일에 미련하게 매달리는 것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신에게 실망하며 정말 지쳤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끙끙 앓았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기도 하고, 갖은 짜증과 성질을 다 부려보기도 하고… 어떤 태도였든 제 주변 사람들이 아주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든 그럴수록 더 헤어나올 수 없이 힘들어지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정말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문득 모 방송사의 1차 카메라테스트에서 떨어졌던 날이 떠오르네요. 그 당시 그 방송사의 아침 프로그램에서 리포터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촬영이 있었기에 참담한 결과에도 울지 못 하고 꾹 참고 있었습니다. 그때 은사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민교 씨, 붙었죠?’라고 물으시는데, 참았던 눈물이 그만 왈칵 쏟아져버렸습니다. ‘당장 오라’시는 선생님을 뵙고 2시간 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내가 네 인생을 책임져줄 수 없지만 넌 계속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말씀과 함께 마치 1차 시험날 현장에 계셨던 것처럼 제 문제점과 보완할 부분들을 따끔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아나운서 입사 시험이 1번에 3번, 2번에 5번, 객관식 시험처럼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몇 점 만점에 몇 점 이상이면 합격이라는 명확한 커트라인이 알려져 있는 것도 아니기에 시험에서 떨어져도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은데, 선생님의 ‘족집게 오답노트’에 울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준비생이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아나운서가 아니라면 제게 차선책이 있는지를 자주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차선책’이란 말이 너무 싫었습니다. 차선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건, 최선책이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는 것 같았죠. 그래서, ‘전 아나운서가 될 것이기에 차선책은 필요 없다’며 아주 고집스럽게 아버지와 다퉜던 기억들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제 꿈을 부정하신 게 아니라 세상을 좀 더 넓은 눈으로 보라는 조언을 해 주신건데… 지금 생각하면 참 아찔하게 무모했죠.
함께 시험을 준비했던 모임의 (‘전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친구들도 큰 힘이었습니다. 그 모임은 운영이 참 잘 됐습니다. 서로에게 칭찬도 지적도 아주 거침없이 했죠. 예를 들어, 뉴스 낭독 연습을 할 때 그냥 ‘○○야 잘했어’, 습관 같은 칭찬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발음 하나 표정 하나에 대해 가감 없이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런 얘기들에 언짢아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 외적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참 많이 됐습니다. 연습을 하다가도 수다를 떨면서 남자친구 얘기, 어느 면접장 얘기, 정말 별별 얘기를 다 하곤 했습니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모두가 서로에게 애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응원했기에 실력도 많이 늘고, 정신적으로 의지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구성원 모두가 다 잘됐습니다. 아나운서부터 자신의 회사를 차린 CEO까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새삼 참 어마어마한 친구들과 함께했구나 감탄을 하게 되네요.
곁에 당근과 채찍을 모두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많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갯벌(!)과 같이 발이 푹푹 빠지고 무릎이 꺾이는 시간 동안 가장 크고 단단하게 배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칭찬, 좋은 얘기는 계속 듣고 싶고, 잘못을 꼬집는 말, 쓴소리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죠. 하지만 아주 상투적인 표현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는 말처럼, 현실을 일깨워주는 따끔한 지적들이 나를 더 크게 한다는 걸 너무도 확실하게 배우며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아, 입바른 말만 들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당근과 채찍 모두’ 줄 수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었으면 하는 거죠. 그리고 그런 이들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것도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어쩌면 그들이 당신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당신을 지켜보고,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JTBC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은 건 다른 언론사에서 임원 면접을 보고 나온 뒤였습니다. 가방 안에 넣은 휴대전화를 꺼내 드는 순간, 눈에 들어온 합격 문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지만, 다른 회사에서 너무 좋아할 수가 없어서 가까스로 참으며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를 타자마자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간의 노력을 봐주셨구나’ 하는 감사함과 이제야 비로소 그 동안 많은 분들께 받았던 고마운 마음들을 돌려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교차했습니다. 그 마음을 잊지도 잃지도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결심이 흔들리는 순간들도 많지만, 여전히 ‘당근과 채찍을 모두 주시는 고마운 분들’께서는 저를 바로잡아주고 계십니다. 그런 제 인복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열심히 방송하고 치열하게 즐기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JTBC 공채 1기 아나운서 송민교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본 콘텐츠는 위스타트 소식지 13호에 실린 글입니다.
위스타트 소식지 13호
발행일 2023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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