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보면 도약이 보인다
이승연 | 민화작가
그림 안에는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방향과 그리고 인생의 어느 순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의 카테고리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 속담이나 설화 등 우리 문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토끼’는 쫑긋한 귀, 동그란 눈, 작은 몸, 폭신한 털, 짧은 앞다리, 긴 뒷다리, 약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떡방아를 찧는다 등 다양한 모습으로 연상된다. 그렇지만 토끼는 대체로 영리함과 교활함을 상징하기도 하여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양가성을 띠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회화에서 그려진 토끼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많다.
필자 미상의 <화조영모도>를 보면 소나무 위에 앉아서 금방이라도 토끼를 낚아채어 갈 듯 토끼를 응시하고 있는 매가 보인다. 소나무 아래에는 엉덩이는 쭉 빼고 땅위로 솟아 올라와 있는 소나무 뿌리 사이로 머리만 들이밀고 매의 시선을 피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토끼의 모습이 보인다. 머리만 숨긴다고 매의 매서운 눈을 피할 수는 없지만 토끼로서는 최선을 다해 살고자 하는 웃픈(?)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렇듯 토끼는 매와 같은 최상의 포식자에게는 그저 한입거리 밖에 되지 않는 작고 하찮은 존재일 뿐이지만, 고대인들에게 토끼는 목숨을 구걸하는 약하기만 한 동물로만 인식되었던 것은 아니다. 토끼는 생태학적으로 생후 6개월이면 임신이 가능하고 또한 임신 기간도 30일 전후로 짧은데다 한번에 4~6마리의 새끼를 낳아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였다.
«박물지»라는 고대서에서는 “토끼는 서로 털을 핥으며 달을 바라보면 새끼를 가질 수 있으며 입으로 새끼를 토해내어 낳는다.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었으며 나는 눈으로 직접 보았다.”라고 쓰여있다. 토끼의 다산을 표현한 이 글은 다소 황당무계 하지만 고대인들이 토끼를 출산과 다산의 상징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단적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 인구의 수는 ‘힘=권력’이었고, 경제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조그만 부락을 이루고 살다가 인구가 점차 늘어나면, 하나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었고 또한 경제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달 속에서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떡방아를 찧고 있다고 들으면서 성장해 왔지만 중국에서는 토끼가 찧는 것은 떡방아가 아니라 불사약이라고 생각했다. 도교에서 최고의 여신이자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며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는 ‘서왕모’를 위해 토끼는 끊임없이 불사약을 찧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토끼를 흔히 ‘달토끼’, ‘옥토끼’라고도 부른다. «초사»에서 굴원(B.C.343~B.C.278)은 “달은 무슨 신묘한 약을 얻었기에 죽었다 다시 살아나나? 달은 무슨 이로움이 있다고 뱃속에 토끼를 키우나?”라고 그의 시에서 낭만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 달이 차고 기울고 다시 차는 달의 순환을 보고 고대인들은 탄생과 죽음, 부활, 재생, 생성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2022년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호의 발사 성공으로 이제 달은 계수나무 한그루, 토끼 한 마리의 낭만으로 남겨두고 우리는 한발 더 도약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야 할 때인 것이다.
*본 콘텐츠는 위스타트 소식지 13호에 실린 글입니다.
위스타트 소식지 13호
발행일 2023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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