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카미유 생상스가 쓴 오르간 교향곡을 들어보라. 소리가 쏟아진다는 말이 뭔지 알게 된다. 이상할 정도로 큰 소리, 그 중에서도 정곡을 찌르는 것 같은 거대한 음향이 귀를 찌른다. 그가 쓴 피아노 협주곡은 어려운 기교로 가득하다. 교향악단들이 함께 연주할 협연자를 뽑을 때 과제로 내곤 하는 곡들이다. 이런 생상스는 80세가 넘어 사망하기 직전인 말년에 바순 소나타를 썼다. 여기에는 어려운 테크닉은커녕 아무것도 없고 흘러가는 음악만 있다.

2017년 11월 23일 저녁, 나는 서울 잠실의 롯데콘서트홀 무대 뒤에서 이 작품을 듣고 있었다. 거대한 음악을 썼던 작곡가의 마지막 해에는 왜 이렇게 소박한 음악이 나왔을까. 아무것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음악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숙연해지는 희한한 노래다. 무대 위에는 바순 연주자 유성권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JTBC의 디지털 콘텐츠였던 <고전적 하루>가 연 갈라 콘서트 첫 무대였다. <고전적 하루>는 2017년 1~6월 22번의 온라인 방송을 마치고 실제 무대에서 연주자들의 갈라 콘서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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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연주자는 7명. 피아니스트 손열음ㆍ김선욱ㆍ김재원ㆍ박종해, 소프라노 임선혜, 첼리스트 고봉인, 바수니스트 유성권이었다. 연주자들은 이런 희한한 조합으로 한 무대에 서는 것이 처음이었다. 공연뿐 아니라 무대 뒤 장면까지 녹화해 방송한다는 설명 또한 낯설어 했다. JTBC 제작진은 클래식 음악으로 공연과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장소 협찬으로 도움을 준 롯데콘서트홀은 수십 대의 방송 카메라가 들어오는 공연을 처음 해봤다. 나는 나대로, 연주자들 전부를 섭외하고 이들과 협의해 연주곡목을 정하고, 무대에서 음악회를 진행하는 일이 처음이었다. 나는 바쁘고 잘 나가는 연주자들에게 애원하다시피 해서 공연 날짜를 맞췄다. 어떤 연주자에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무대에 서달라 설득을 했고 또 다른 연주자에겐 나의 어린 아들과 딸 사진을 보내며 인정에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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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모든 일이 잘 돌아가진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실수가 나왔고 대부분의 참담한 실수는 나에게서 시작됐음을 고백한다. 모든 사람들이 지쳐있었고 다 같이 헐떡이며 6개월 이상을 달려온 결과가 바로 이 무대였다. 그 첫 연주가 생상스의 바순 소나타다. 서툰 질주의 끝에 갑자기 멈춰 선 듯 나는 무대 뒤에서 그냥 음악을 들었다. ‘저 음악은 왜 저리 태연하지?’ 아마 모든 스태프가 그렇게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대 뒤의 모든 난리 나는 상황이 마치 없었다는 듯, 생상스의 음악은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뛰어다니던 모든 스태프(나를 포함해)가 생상스의 바순 소나타라는 캡슐 안에서 정지한 채 음악을 듣고 있는 장면을 그릴 것 같다. 3악장까지 10분 정도가 흐르는 동안 그간의 복잡한 상황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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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인생 전체를 위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첫 곡이 끝나고 연주자들이 내려오자마자 ‘지옥’이 다시 시작됐다. 수십 명이 정신을 못 차린 채 무대와 무대 뒤를 휘젓고 다녔고 카메라는 바쁘게 돌아갔다. 카메라가 공연에 방해가 된다는 청중의 항의를 대하는 스태프들의 얼굴은 다시 하얗게 질렸고, 크고 작은 사건이 또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즈음 모차르트가 등장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박종해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모차르트 사운드에 가깝게 네 손을 위한 변주곡 K.501을 연주했다. 무대 위에서 조악하기 그지없던 나의 진행 솜씨에 머리를 쥐어뜯던 나는 이들의 첫 소절을 들으며 잠시 또 음악의 캡슐에 들어갔다. 여기에선 모든 게 괜찮은 듯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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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사람이 음악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대해 백퍼센트 그렇다고 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악은 인생을 잠시 멈추게 또는 느리게 가게 한다. 형편없는 공연 기획자였고, 두서없는 공연 진행자였던 나는 7명의 훌륭한 연주자들 덕분에 잠시라도 마취된 채 내 참담한 처지를 잊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아주 오래가진 않았다. 지금도 아쉬움이 많은 공연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일어날 지경이지만, 나를 잠시 다른 세상에 보내줄 음악과 연주자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에 안도하곤 한다. 이런 마취와 각성을 반복하면서 거듭되는 게 시간이고 삶 아니겠나 싶다.


글: 김호정 중앙일보 아트팀 기자
* 이 글은 위스타트 소식지 Vol.8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