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비건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 기후, 미세 먼지, 전염병 등의 부작용이 우리의 일상을 직접적으로 침투하면서, 공존을 위한 비거니즘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아직 비건이 소수이기도 하고 특히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방식인 채식에 대한 장벽이 느껴지는 탓에, 관심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엔 더딘 면이 있는 듯해요. 그래서 제가 초보 비건에서 여유로운 비건이 되기까지의 시행착오를 공유해볼까 합니다.
인간과 동물의 연결을 인지한 후, 동물 소비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동물성 영양분 섭취, 의학 개발, 미용 등 동물 소비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뒤로 두고서라도, 동물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는 명백하게 잘못되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열악한 사육 환경과 최소한의 마취도 이뤄지지 않는 물리적 가학, 존엄성보다 효율성을 우선하는 도살 등이 있죠. 연결을 인지하고서 저는 불편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채식 외에도 동물을 위한 활동들이 있지만 하나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2단계. 왕초보 비건이 되다.
차곡차곡. 불편함이 몇 년간 쌓이다가 ‘게리 유로프스키’라는 동물권 활동가의 강연을 보고 육식의 비중을 줄여야겠다고 드디어 다짐했습니다. 행동의 물꼬가 트여서인지 육식을 줄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 채식을 지향하는 비건이 되었죠. 그땐 주변에 비건이 한 명도 없었기에 어떻게 비거니즘을 실천하는지 몰라, 다른 비건분들 SNS 계정을 구독하며 야금야금 실천법을 익혀갔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저만의 작은 도전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모든 걸 알고 비건이 된 것이 아니었기에, 공장식 축산이 생태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뒤늦게 공부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찾아보려고 하니 자료는 이미 넘쳐나더라고요. 각성한 듯 감각이 열려 사회에 가득한 문제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적인 사회 구조에도 화가 났지만 저 자신에게도 화가 났어요. 그래서 잔혹한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도 했지요. 마치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듯 말이에요.
4단계. 꿈꾸는 비건
태풍이 지나간 후 하늘이 맑아지듯, 비건 지향 초반 거센 혼란이 지나가고 일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맑아졌어요.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개인 SNS에 연재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저의 생각들을 다듬어갈 수 있었죠. 완벽하지 않다고 무가치한 것이 아니며 하나의 실천은 최소한 하나의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품는 비건이 되었습니다.
비거니즘이란 방향성이기에 완성이란 없는 것 같아요. 동물권에서 시작해서 환경 문제에도 더 관심을 두게 되었고,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비거니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실천 방식을 돌아보면서 좀 더 모두가 온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태도를 찾고 있습니다.
6단계. 나다운 비건이 되어 살아가다.
비건이 된 초반에는 온 신경을 비거니즘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강박을 버리고 다시 나로 돌아와 살고 있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비건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정리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지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저에겐 여러 욕심이 있어요. 소중한 이들과 사랑 나누기, 작가로 돈 벌며 살아가기, 건강하기,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해가기 등이요. 이런 욕심과 꿈을 실현해나가면서 나답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비건 지향 또한 나답게 하고 싶어요.
돌아보면 비거니즘을 향한 저다운 접근법이 생기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했네요. 비거니즘은 가치관이기에 사람마다 이를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모습이 다 다르지요. 비건에 대한 관심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속도 또한 모두가 다를 거예요. 비건에 관심이 생겼다? 혹은 어딘가 불편하다? 라고 하신다면 이미 마음의 방향이 움직인 걸 거예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을 잃지 않으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