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수상작 2015년 <아버지의 방>
부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수상작 2020년 <아홉 살의 사루비아>
장나리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서 줄곧 불안한 가족과 그 안에서 상처 받은 아이를 그려냈다.
2021년 위스타트의 새로운 캠페인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이 결정되면서 만나게 된 그녀.
국내외 영화제의 화려한 수상 경력보다 더욱 믿음이 갔던 것은
사람들의 마음, 특히 아이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감독의 세심하고 사려 깊은 시선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욱 큰 상처로 남는 아이들의 ‘마음 속 멍’을 살피고
그 멍을 치유해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위스타트의 인성교육.
40초의 짧은 시간에 이 특별한 스토리를 담아낸 장나리 감독을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1.  감독님 안녕하세요. 애니메이션 영상 작업 중에 모니터로 만나뵈었었는데, 역시나 비대면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네! 날이 한창 뜨거울 때 작업했었는데 벌써 해가 바뀌었네요. 쏜살같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새삼스러워지는 요즘입니다. 저는 하던 작업들이 전부 마무리되어 현재는 휴식중이랍니다. 😌

2.  위스타트 후원자분들께 감독님이 만드신 애니메이션 영상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처음에 작업의뢰를 받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궁금해요.

다루어보지 않은 주제나 아트웍을 구현해보는 일은 일단 작업자로서는 즐거운 도전이고 기회이죠. 다만 녹록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거쳤던 어른으로서의 저는 위스타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조금 더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시야라거나 사고의 폭 같은 것들은 자신의 상황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은 아예 인지하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인거죠. 그로 인해 나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데에 한계가 분명하게 생기고,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거예요. 저는 그 좁은 터널을 지나왔고 아직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을 그리는 작업이라 생각하니 어릴 때의 제 모습이 자꾸 떠올라 더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3.  이번 작업에서 감독님이 가장 중점적으로 표현하신 것, 혹은 가장 강조하고 싶으셨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아이 시선이 닿는 곳의 거리와 방향 그리고 어둠이었어요. 멀리 보지 않고, 눈앞에 있는 것을 주로 보는데 그것이 너무 익숙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모습이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 매일 조금씩 부서져가는 아이의 시선과 사람들의 시선은 겹치지 않는 높이에서 스쳐지나가기만 하는 거죠.

4.  감독님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면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있어요. 색상의 선택, 그리고 거친 질감의 표현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작업을 하시는 건가요?

의도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그려지는 것 같아요. 어두운 부분을 그리는 것이 익숙하고 또 그게 익숙한 이유는 비교적 더 잘 아는 감정이기 때문이겠죠. 잘 아는 것이 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물론 저와 비슷한 환경의 시절을 보냈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성향의 작업을 할 수 도 있는데 아마 그건 경험을 그리느냐, 이상을 그리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해요. 저는 전자고요.

5.  그래서인지 이번 위스타트 인성캠페인 영상에서 파란색으로 쓰여진 심장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푸른 심장은 함흥주 작가님의 기획이었고 저는 그 심장이 돋보이게 흑백으로 배치를 했어요. 짧은 시간 안에 보여야 하는 만큼 가독성이 좋은 영상 이미지로 표현해야 했고요. 의도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봐야죠. 전달이 잘 된 것 같아서 만족스럽네요.

6.  영상에 나오는 장면이 정말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감독님은 어떠신가요?

앞서 이야기 했지만, 저 역시 어릴 때의 제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했던지라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보다 사회가 더 복잡해진 만큼 지금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예요. 피부로 와닿는 격차가 크면 포기를 가장 먼저 배우게 되고 의지는 쉽게 꺾이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그런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 다는 것이 더 슬픈 일이고요.

7.  혹시 작업하시면서 숨겨놓은 장치가 있으실까요? 혹은 표현하기 애매했던 부분이라던지요. 작업하시면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으셨을까요?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은 있을 것 같아요. 후반부에서 누군가 아이를 보기 위한 액션을 취하기 전까지 아이와 다른 이들의 시선의 높이가 달라 겹치는 부분이 없고요. 심지어 아이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바닥보다 더 낮은 곳에 살고 있어요. 원래는 더 확실하게 표현해주려고 계단을 내려가는 컷도 있었는데 러닝 타임의 한계로 편집되었어요. 그리고 좁은 창으로 비추는 한 줌의 빛도 아이에게서 꺼져가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는데 알아차린 분이 있을까요? 😏

8.  우리 주변의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선뜻 답하기가 어려운 이야기네요. 그 힘듦이 한가지인 것 같아도 들여다보면 사람 수 만큼 다를 수 있는 정도의 문제니까요. 힘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듣는 피상적인 말들은 어쩐지 화가 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 말들이 또 어느 정도는 맞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전하고 싶은 말도 어쩌면 너무 뻔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염려가 되네요. 그 힘든 시간들이 내가 결정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한 것이라면 너무 그 고통에 몰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각보다 나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나와 내 시간이면 충분하기도 하더라고요. 

9.  감독님의 올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개인 작업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그동안 일하면서 3D에 관심이 조금 생겼는데 작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자료도 좀 찾아보고 필요한 부분들을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봄에 시작해 가을에 결실을 맺은 위스타트 인성교육 캠페인 애니메이션 작업.
40초의 영상은 꼬박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완성됐다.
여러 차례 이어진 기획 회의, 그림과 애니메이션을 오롯이 전담해준 장나리 감독,
음악과 음향을 디자인한 작곡가 김소담 음악감독,
목소리로 따뜻하고 힘 있는 숨결을 불어넣은 이금희 아나운서.
슬픔과 좌절로 부서진 아이의 심장에 공감과 희망을 심어줄 다음 차례는 지금 여기, 우리 모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