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는 아주 근사한 여행에 도전했다. 당나귀와 함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일이다. 이 계획은 3년이라는 적지 않은 숙성기간과 망설임 속에서 잉태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당나귀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있는 어린이전용도서관을 간 적이 있었다. 재미 삼아 동화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동화로 된 여행기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서가에 꽂혀 있던 책들은 내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그 여행기들이 전부였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괴테의 멋진 말이 아니더라도 여행은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 이때 나는 동화로 여행기를 써 아이들에게 여행을 시켜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상징적인 소재가 필요했다. 문득 당나귀라는 동화 속의 아주 친근한 동물이 떠 올랐다.
원래 당나귀와의 여행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라 제주 올레길에서 하려고 했다. 여러번의 답사 결과 올레길은 당나귀가 걷기에는 어려운 길임을 알았다. 당나귀는 작은 새소리나 물소리에 기겁을 한다. 파도소리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길에는 바위가 많아 당나귀가 걷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찾아왔다.
어느 날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용서의 언덕’에 있는 철 구조물을 찍은 사진이었다. 말과 당나귀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하는 옛 순례자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 사진에서 이 길은 당나귀나 말들도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동화속에서의 당나귀는 고집이 세고 잔머리를 잘 굴리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당나귀가 한번 고집을 부리면 웬만한 매로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집이 센 사람을 일컬어 ‘당나귀 고집쟁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런 당나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2021년 9월 나는 스페인에 있는 피레네 산맥의 작은 마을 <리짜>로 떠났다. 이곳에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날 당나귀가 있기 때문이다. 당나귀의 이름은 <호택>이라 지었다. 그냥 스페인의 유명한 소설가가 쓴 <돈 키호테>라는 말을 패러디하여 <동키 호택>이라 지은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당나귀를 협찬해 준 주인 아리츠에게 일주일간의 교육을 받은 후 814km의 장도에 올랐다. 총 80일의 여행 중 71일을 당나귀 호택이와 함께 걸었다.
길을 걷는 동안 뜻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졌다. 그것은 순례길에 살고 있던 스페인 사람들의 열렬한 응원과 관심이었다. 사람들은 당나귀를 보면 먹을 것을 가져다준다던가 잠자리를 제공해 주곤 했다. 길에서 만나는 스페인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응원했고 급기야 현지 방송과 신문에 대서 특필되었다. 무려 10개가 넘는 신문의 전면을 채웠으며 지역 방송인 <폰페레다TV>에서는 저녁 황금시간인 8시뉴스에 무려 27분간을 방영하기도 했다.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 예상을 넘는 관심이었다.
오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길은 사람들이 걷는 순례길이면서 과거 경제가 흐르는 물류의 길이도 했다. 그들에게 당나귀는 없어서는 안 될 짐꾼이었다. 불과 이십여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당나귀에 기대어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의 순례자들의 짐을 다음 마을까지 실어다 주는 택배의 이름이 바로 <동키서비스>다.
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 당나귀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 깊숙이 숨어있던 향수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쩌면 잊혀져가고 있던 자신들의 DNA를 발견하고 기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만일 내가 여느 사람들처럼 배낭을 메고 이 길을 걸었다면 이들의 관심은 없었을 것이다. 당나귀야말로 이 길에 살고 있던 스페인 사람들과 나를 이어준 ‘소통의 징검다리’였음이 분명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당나귀의 관점에서 동화로 쓸 계획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건너왔던 당나귀라는 징검다리를 딛고 아이들도 건너올 것이 분명하다.
남과 북이 단절된 우리나라는 섬나라와 다르지 않다. 이러다 보니 여행은 비행기나 배로 떠나야 하는 어려운 여정이 되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나의 임무다. 여행은 <길 위의 학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