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그랑 주떼 꿈을 향한 점프
최민영 | ‘아무튼, 발레’ 저자
발레의 점프 동작, 특히 무용수들이 도움닫기를 하면서 마치 날아오르듯 공중으로 뛰어 오르는 ‘그랑 주떼’(grand jeté)에는 인생의 흥망성쇠가 모두 담겨 있다. 거창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취미로 발레를 8년 간 배워본 결과 정말로 그렇다. 여러 권의 책을 읽어 머리로 알 수 있는 그 무엇을, 몸으로 직접 부딪쳐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초심자로서 높이 뛰려다 흔하게 했던 실수는 ‘배치기’다. 점프는 기본적으로 ‘상하’운동인데 몸통이 ‘전후’로 흔들리기 일쑤였다. 공중으로 떠오르기에 앞서 가장 먼저 갖춰야 했던 기본은 몸통의 중심부터 단단하게 세우는 것이었다. 힘들어서 질색이지만, 크런치·레그레이즈·플랭크를 비롯한 복근 운동으로 코어 근육부터 잡아야 했다. 내 중심이 튼튼하지 않으면, 내가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으로 힘을 집중할 수 없고, 작은 외부 충격에도 에너지가 사방으로 무의미하게 흩어지기 때문이다. 나를 세우는 과정은 지난한데, 태만하면 눈깜짝할 새에 퇴보한다. 점프 높이가 으뜸인 발레리노로 손꼽히는 김기민 마린스키 수석 무용수는 성인 취미학생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뭐든 다 빨리빨리 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그런 식으로 늘지 않습니다. 저는 요즘도 아침에 눈 뜨면 복근 운동 200개부터합니다.”
그랑 주떼의 시작은, 먼저 무릎을 구부리며 최대한 낮아지는 ‘플리에’(plie)다. <아무튼, 발레>에 적은 대로, “스스로 높아지겠다는 마음으로는 스스로 높아지지 않는 삶과 많이 닮았다.” 엉덩이 고관절부터 시작해서 발목까지 근육을 바깥쪽으로 회전시키는 ‘턴아웃’하며 힘을 응집한다. 그리고 음악이 지시하는 순간, 뒷발로 땅을 밀어내고 앞발을 가슴 높이로 차올리면서 불꽃놀이처럼 에너지를 뿜어낸다. 하지만 종종 플리에를 충분히 하는 것을 까먹곤 한다. 음악이 빨라지고 순서에 당황하고 마음이 급해져서다. 높이 뛰어오를 ‘미래’에 정신이 팔리면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다. 미래는 현재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에만 힘을 갖는구나 생각하곤 한다. 높이 뛰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의 의지인 시선과 팔을 찰나의 순간 먼저 보내는 정도로 충분하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몸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의식하는 게 중요하다. 발레 선생님들께 자주 듣는 얘기 중 하나가 “팔다리를 마구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를 못했다가 양팔로 수건 빨래라도 터는 듯한 수업 동영상 속 내 모습을 보곤 충격 받은 적이 있다. 그저 ‘뛰었다’는 사실 하나로 ‘땡’ 하고 자동완성이라도 되는 양 착각했던 것이다. 합기도를 오랫동안 연마한 일본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1초를 한 단위로 움직이는 사람과 100분의 1초 단위로 자신의 신체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신체를 컨트롤하는 수준이 전혀 다르다”고 말한 적 있다. “뛰어난 무용수는 같은 한 스텝을 밟는 데도 아주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시간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 주관적인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랑 주떼의 마지막 단계는, 잘 떨어지는 것이다. 지구의 중력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누구나 높이 떠오른 만큼 반드시 떨어진다. 이 때 ‘플리에’가 필요하다. 땅에 착지하는 순간 내 몸이 받는 충격을 용수철처럼 줄여야 한다. 떠있는 순간만 생각하다가 플리에를 안 하면 무릎관절이나 발목 부상을 당하기 쉽다. 몇 번은 괜찮지만 타격이 오랜 시간 쌓이면 더 이상 날아오를 수 없게 된다. 달은 차면 기울고, 꽃은 피면 진다. 그러나 또한 달은 다시 뜨고, 꽃도 다시 핀다. 이번 점프를 마무리하는 플리에는 곧 다음 점프를 준비하는 플리에다. 쇠망의 순간을 힘껏 끌어안는 플리에를 할 때, 다음 그랑 주떼를 힘차게 뛸 수 있다. 남들 뛰고 있는데 나만 한껏 낮은 플리에를 하는 건 아닐까 초조해할 필요도 없다. 어디에도 휘둘리거나 흔들리지 않고, 당신만의 멋진 그랑 주떼를 뛰는 한 해를 응원한다.
*본 콘텐츠는 위스타트 소식지 13호에 실린 글입니다.
위스타트 소식지 13호
발행일 2023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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