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 기대했는데 무시당할 때 드는 게 서운한 감정
의도적인 건 거의 없어 … 그때그때 느낌 꼭 표현해야

혜민 스님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의외로 ‘인간관계’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다. 관계는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제3의 외적 요인에 의해 깨지기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어떻게 금이 가기 시작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종 ‘서운하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불쑥 올라올 때부터인 것 같다. 즉, 서운한 마음은 잘못하면 관계가 어긋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초기 경고등과 같다. 사람들에게 내가 강조하며 말하는 것 중 하나인데, 서운함은 그때그때 꼭 말해야 한다. 그 마음을 눌러놓으면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폭발하게 되고 도저히 풀 수 없는 관계가 돼버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모국어가 영어인 사람들은 “나, 너한테 좀 서운해”라는 식의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너 때문에 상처받았어(hurt), 슬퍼(sad), 후회돼(regret)” 같은 식의 유사 표현들은 자주 들을 수 있지만 “나, 너한테 좀 서운해”라는 정확한 표현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서운하다’라는 우리말의 의미가 조금 특별해서인 것 같다. ‘서운하다’라는 말은 내가 마음속으로 상대에게 어떤 기대를 했는데 상대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내 기대를 저버리거나 무시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즉, ‘내가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 알아듣겠니? 네가 내 표정이나 상황을 보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좀 맞춰줘야지 왜 그걸 못해?’가 바로 ‘서운하다’이다.

(중략)
글= 혜민 스님
일러스트= 강일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