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미선 작가

거울 안에는 나와 다른 내가 있다. 깊고 많아진 주름, 눈에 띄는 흰머리, 푸석푸석한 피부, 퀭한 눈빛. 그건 분명 내가 아닌 다른 누구일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도 거울은 ‘나는 틀림 없이 너야!’라고 각인시키듯 그 모습 그대로 섰다. 그건 분명 나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마흔의 나. 늘 이팔청춘일 줄 알았던 걸까. 변한 나의 모습은 마음까지 파고 들었다.

계란 한 판을 앞에 두고 이제 30대라며 세상 다 산 듯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흔이 됐다. 시간은 빛의 속도와 견주기라도 하려는 걸까. 너무도 빠르게 앞질러 간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는 불혹인데 어째서인지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인간으로 남아있다.

‘마흔 앓이’라는 말이 있다. 마흔 즈음에 신체적,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겪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하는데 ‘제2의 사춘기’라고도 한단다. 사춘기에도 크게 방황한 적 없는 나인데 두 번째 사춘기는 만만치 않았다. 상상하던 마흔과 너무도 다른 나에게 실망했고, 아무것도 제대로 이뤄 놓지 않은 내가 불쌍했다. 또 앞으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매일이 후회의 연속이었다. 신세한탄만 이어졌다.

하고 싶은 게 많다.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데 남편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무엇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높고 두꺼운 장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포기’와 ‘희생’이라는 단어에 봉인되려는 시점에 댄서 아이키가 경종을 울렸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그는 아내이고 엄마이면서도 꿈을 놓지 않았다. 끊임 없이 노력하고 도전한 결과 대한민국 대표 댄서 중 한 명이 됐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삶이다. 아이키를 보며 깨달았다.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물론 그와 내겐 주어진 환경이 다르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을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 누군가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한 자극이 됐다.

아이키처럼 내게도 꿈꿀 수 있는 설렘이 필요했다. 더 이상 엄마로만 남고 싶지는 않으니까, 한 번 사는 인생 재밌게 살고 싶으니까, 변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변화는 나를 돌아보며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비록 지금은 여러 제약이 있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찾아보면 될 일이다. 작은 물결이 큰 물결을 만들어 내듯 내 작은 변화와 노력은 이후의 나를 만드는 디딤돌이 될 테니.

남편과 아이와 가정을 돌보며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아주 잘 하지는 않아도 할 줄 아는 것.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 그러면서 성취도 얻을 수 있는 것. 고민하다 찾은 답은 ‘글쓰기’다. 과거 작은 신문사와 잡지사 등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고, 아주 맛깔스럽지는 않더라도 매끄럽게 다듬을 줄은 아니까. 방향을 잡았더니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SNS에 글을 쓰기로 한 것인데 글이 쌓일수록 점점 활기를 찾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변하고 있었다. 지난 해에는 관내 백일장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상에 ‘나도 아직 뭔가 할 수 있구나’ 설렜다. 더 열심히, 더 재밌게 할 이유가 생겼다.

주위에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지인들이 있다. 사십 대 중반에 자격증을 취득해 강사로 활동 중인 사람도, 뒤늦게 사업을 시작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꼭 경제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운동을 배우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히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보면 나는 그동안 핑계로 일관하며 한 자리에 머물기를 자처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후회만 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이뤄낼 수 있을 것이고, 할 수 없다고 포기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 내 목표는 ‘뭐라도 하자. 일단 시작이라도 하자’이다. SNS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기로 스스로와 약속했고, 운동도 할 계획이다. 나를 포기하지도, 희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일찍이 가정을 건사하고 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마흔이 세상에 미혹되지 않는 불혹이었을지 몰라도 현 시대의 마흔은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새로운 삶을 계획해야 하는 나이다. ‘감회(憾悔, 한탄하고 뉘우침)’, ‘변모(變貌, 모양이나 모습이 달라지거나 바뀜)’ 정도가 맞지 않을까.

어디선가 본 ‘마흔은 두 번째 스무 살’이라는 말에 가슴이 뛴다. 선물 같은 두 번째 스무 살을 감사히 받으며 앞으로 더 빛날 날들을 그려본다. 내 인생의 선봉장이 되어 신나는 삶을 시작할 것이다. 인생은 바로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