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철원 이우학교 교장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에 관해 쓰고 있었다. 아이는 왼팔로 종이를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글을 쓰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아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하얀색 마스크와 안경 너머 아이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기억이 안 나요.” 아이의 말이 정확히 들리지 않아서 나는 귀를 아이에게 더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아이는 점점 더 작게 말했다. “슬픈 것만 기억나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이의 검은색 패딩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짚어주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떠오르는 슬픔을 그냥 적어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의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자신에게 떠오르는 것들을 잘 붙잡아 종이 위에 옮겨 주는 시간이니까 그래도 된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슬픔을 적어보라고 하기에는 아이의 슬픔이 너무 많고 너무 깊은 것 같아서.
아이가 그 시간에 쓴 글을 나중에 읽을 수 있었다. 아이는 가장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을 ‘아빠가 맨날 오토바이 태워서 초등학교에 데려다준 거’라고 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도 썼다. 엄마랑 아빠랑 자기 생일 때 밖에서 칼국수 먹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가족 다 같이 처음으로 먹은 날이자 마지막이라’ 기억에 남는다고도 썼다.
며칠이 지나고 복도에서 아이와 마주쳤다. 나는 아이의 글을 읽었다고 말하며 네가 가진 복잡하고 모순적인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아무 미사여구 없이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써주어서 글이 너무 좋았다고 말해주었다. 글이 구체적이라는 말은 피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그래서 용기 내는 일이기도 하다. 순정하고 투명하게 얇지만 깊은 내면의 피부를 꺼내어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글은 때로 아프기도 하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말하는 동안 아이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된다고. 내가 무슨 글을 잘 쓰냐고, 내 글이 무슨 좋은 글이냐고 말하듯이 아이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나는 웃으며 “글쓰기 선생님이 글이 좋다고 말하는데 너는 왜 자꾸 아니라고 해”라고 말했다.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자기가 싫고, 갈수록 모든게 부정적으로만 보인다고 썼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가녀리고 희미한 빛을 세상 밖으로 꺼내 간신히 보여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금방 사라질 것 같은 그 작고 작은 아이의 빛을 나는 내내 생각하고 있다.
이 아이들과 만난 지 오늘로 141일 되었다. 급식실 앞 벚꽃 나무보다 ‘사랑해본 사람만이 사랑을 배울 수 있다’라고 쓰인 2층과 3층 사이 계단의 문장보다 교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과 함께 앉은 책상과 의자보다 학교 담장의 붉은 장미꽃과 체육관의 마루 바닥보다 운동장에 내려앉은 아침의 안개와 저녁의 노을보다 나는 아이들을 늦게 만났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가장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지 않아 끝내 울어버린 아이의 마음과 그때 아이의 글썽이던 눈동자를 알고 있고, 학원에 갈 수 없어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타던 아이와 아빠와의 마지막 식사를 기억하는 아이를 알고 있다. 일 때문에 바쁘셔서 2주 만에 집에 온 엄마, 하교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들리던 엄마의 청소기 소리, 제일 좋아하던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 아이가 항상 보고 싶고 그리워했던 엄마를 알고 있다. 그것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는 그와 그걸 말할 때 환해지는 그의 얼굴도 알고 있다. 친구가 만들어 주었던 맛있는 파스타와 사주었던 탕후루를 알고 있고, 슬픈 날 복도에서 안아주던 친구들의 따뜻한 포옹과 교과서 가득 필기 되어 있던 정직하고 성실한 글자들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시가 뜻대로 되지 않아 기운이 없던 아이의 어깨와 발걸음, 또 그 시간을 견뎌내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그의 씩씩한 달리기도 기억하고 있다.
하여, 나는 겨울의 졸업식 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는 한 인간 존재로, 여러분이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루어내기 위해 얼마나 오래 애쓰며 하루하루 살아냈는지 저는 감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제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나약함, 그래서 우리가 상처받기 쉽고 불완전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완벽해야 하거나 무엇이든 하나쯤은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치면서, 세상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성공관으로 자신을 미워하고 채찍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일은 언제나 반드시 자신을 닮아있습니다. 나 아닌 것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믿고 자신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세상이 당신에게 엉망진창이라고 말할 때마다 씩씩하고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과 나의 상처와 슬픔과 내가 원하는 삶을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삶이 우리에게 주는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면서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오직 나의 삶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삶은 때로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좋은 사람에게도 불행을 주지만 삶은 또한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같이 품고 있습니다. 수없이 무너지면서 또 여러번 나아가는 것이 삶입니다. 그런 당신의 인생에 언제나 우리가 함께 있을 겁니다.”
서해 바다가 가까운 이 작은 학교의 벚꽃 나무는 꽃잎이 진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꽃이 진 자리에는 이제 더없이 높고 광활한 푸른 하늘이 보인다. 텅 빈 나무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가능하다. 나는 안다. 봄이 오면 또 하얀 벚꽃이 거짓말처럼 다시 피어나고 또 진다는 것을. 삶은 불확실하고 우리는 연약하며 고통은 계속되지만 언제나 우리는 상처와 희망을 동시에 품에 끌어안고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아주 가녀리고 작고 희미한 빛 가까이. 희망이 거기에 있고 사랑도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