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손민호 중앙일보 레저팀장

2023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 대전의 한 빵집 주변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이 집 케이크를 사겠다고 늘어선 줄 때문이었다. 빵집에서 시작한 줄은 빵집을 에운 골목을 따라 구불구불 한참을 돌고 돌았다. 이 줄은 12월 25일까지 사흘 내내 끊이지 않았다.

이 화제의 빵집은 성심당이다. 전국에서 제일 많은 빵을 만드는 동네 빵집의 지존. 대전역에서 기차를 놓치는 승객의 팔 할이 성심당 튀김소보로 사려다 늦은 사람이고, 성심당 빵을 사서 다른 지역에 갖다주는 구매 대행업마저 성행한다는 전설의 빵집. 대전광역시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전을 방문하면 가장 가보고 싶은 곳 1위가 성심당이고, 대전에서 꼭 먹고 싶은 음식 1위가 성심당 빵이고, 대전하면 떠오르는 것 1위도 성심당이라고 한다.

사실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은 간단하다.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빵집이 대전 안에서만 빵을 팔다 보니 이 사달이 나고 있다. 군산 이성당, 대구 삼송 빵집,부산 옵스 베이커리 같은 지방의 명물 빵집 대부분이 전국 곳곳에 매장을 두고 있지만, 성심당은 대전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간다. 성심당은 대전에서만 매장 4개를 운영한다. 이 4개 매장에서 하루 평균 10만 개의 빵을 만든다. 직원 수는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900명이 넘고, 2023년 연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제외하면 연 매출 500억 원이 넘는 빵집은 성심당이 유일하다. 성심당은 ‘대전의 성심당’을 ‘성심당의 대전’으로 바꿔 버린, 대전보다 더 유명한 대전 빵집이다.

성심당은 선행과 미담으로도 유명하다. 창업주 임길순(1911∼1997) 씨는 피난민 이었다. 흥남철수 때 피란 내려와 대전에 터를 잡았다. 먹고살기 막막했던 시절, 대전역 앞 대흥동 성당에서 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찐빵을 만들어 판 게 성심당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성심당은 팔고 남은 빵을 나눠줬다. 그 전통이 대를 이어 내려온다. 성심당 2대 대표 임영진 씨는 “요즘에는 한 달에 3000만 원어치의 빵을 불우이웃에게 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성심당 하면 떠오르는 빵이 있다. 튀김소보로다. 성심당 마니아는 줄여서 ‘튀소’라고 부른다. 튀소는 성심당이 고심 끝에 개발한 메뉴다. 하여 생일이 있다. 1980년 5월 20일. 그 시절 성심당에서 가장 잘 나간 세 종류의 빵, 단팥빵과 소보로와 도넛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빵을 목표로 만들어냈다. 정말로 튀소에는 팥 앙금의 달콤한 맛과 소보로의 고소한 맛, 도넛의 바삭바삭한 식감이 모두 들어 있다. 성심당은 2011년 튀소 제작 방식 일체에 관한 특허 등록을 마쳤다.

튀소가 소문만큼 맛이 없다는 후기가 의외로 많다. 그건 100% 당신 잘못이다. 너무 늦게 먹었기 때문이다. 단팥 앙금으로 속을 채운 소보로를 도넛처럼 튀겨낸 빵이 튀김소보로다. 식어서 눅눅해진 도넛처럼 맛없는 빵도 없다. 성심당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7시간 안에 드시라고. 정히 어려우면 프라이팬에서 살짝 구워 먹으라고. 튀소는 아직 따뜻할 때 우유와 함께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다시 말해 대전에서 먹을 때 제일 맛있다.

사람들은 왜 성심당 빵에 열광할까. 성심당의 선행 때문일까. 하나 성심당만의 미담이 폭발적인 인기를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착한 빵집과 장사 잘 되는 빵집이 같은 집은 아니어서이다. 한바탕 유행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1956년 창업한 노포에 유행 운운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성심당은 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싸다. 싸다는 말에는 싸구려라는 의미가 있으니까 가성비가 좋다고 쓰는 게 맞겠다. 예를 들어보자. 2023년 연말 소동을 일으켰던 성심당 딸기시루 케이크의 가격이 4만 3000원이었다. 딸기와 초콜릿 시트가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여 무게가 2.3㎏이나 나가는데, 10만 원이 훌쩍 넘는 특급호텔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반값도 안 됐다. 그러니 그 난리가 일어났던 게다. 성심당 덕분에 대전 원도심 상권이 되살아났다. 실제로 성심당 거리의 상가 공실률이 서울 명동보다도 낮다고 한다. 대전시는 성심당을 앞세워 전국 유일의 빵 축제를 열고 있다. 성심당은 빵집 너머의 빵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