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돌아이’ 너머, 셰프 윤남노가 전하는 진심
방송에서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요리에 몰두하는 ‘요리하는 돌아이’로 불리지만, 우리가 만난 그는 수줍음 많고 정이 넘치는 ‘따뜻한 형’이자 ‘다정한 삼촌’이었습니다. 지난 2년간 위아자 나눔위크를 통해 위스타트 아이들에게 소중한 나눔을 실천해 온 윤남노 셰프. 그가 요리와 삶, 그리고 나눔을 통해 전하고 싶은 ‘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방송에서 보여주신 ‘요리하는 돌아이’라는 닉네임이 워낙 강렬하잖아요. 셰프님 스스로 생각하시는 ‘윤남노’는 어떤 사람인가요?
A. 그 별명은 방송 컨셉일 뿐, 실제 모습과는 정반대인 것 같아요. (웃음) 평소엔 진지할 땐 진지하고, 왈가닥할 때는 또 한없이 밝고요. 무엇보다 겉모습과 달리 정이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방송 속 캐릭터와는 상반된, 조금은 더 따뜻하고 진중한 사람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이번 호의 주제가 <울림>입니다. 셰프님은 늘 손님들에게 미각적인 감동을 주시는 분인데요. 반대로 최근에 드셨던 음식 중에 “와, 이건 진짜 내 마음을 울리는 맛이다” 싶었던, 셰프님에게 깊은 위로와 울림을 줬던 메뉴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최근에 선재 스님께서 싸주신 ‘우엉 김밥’이 기억에 남아요. 들어간 재료라곤 간장과 조청, 우엉, 두부뿐이었거든요. 저는 평소 소스를 즐겨 쓰고 화려한 맛을 내는 요리사인데, 그 투박하고 심플한 김밥이 주는 울림이 상당하더라고요. 재료 본연의 맛과 정성이 어우러지면, 화려한 기교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냉면’도 저에겐 큰 울림이죠. 어릴 땐 냄새도 싫고 놀림도 받아서 입에도 안 댔는데, 이제는 저의 ‘소울 푸드’가 되었으니까요. 싫어했던 기억조차 사랑하게 만드는 힘, 그게 음식의 울림 아닐까요?


Q. 주방이라는 곳이 매 순간이 전쟁터처럼 치열하잖아요. 그렇게 모든 일정을 다 마치고 집에 가셨을 때, 피로한 몸과 마음을 풀리게 해주는 셰프님만의 ‘소확행’이나 힐링 방법이 있으신가요?
A. 맛있는 음식에 술 한 잔 곁들이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주방 용품 구경’이에요. 저는 옷이나 신발에는 관심이 없는데, 그릇이나 칼, 주방물품을 보면 마치 게임기를 산 아이처럼 설레거든요.(웃음) 꼭 사지 않고 구경만 해도 즐겁고, 가끔은 동료들에게 선물해주기도 합니다. 제가 선물한 조리 도구를 동료들이 아껴가며 잘 쓰는 모습을 보면, 제가 쓰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무조건 ‘강아지 영상’을 봅니다. 강아지를 정말 좋아해서 유기견 입양을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집을 오래 비우는 직업이라 실행하진 못했어요. 대신 틈날 때마다 영상을 보고, 쉬는 날엔 유기견 보호소 봉사를 가거나 지인의 강아지를 돌보며 힐링하곤 합니다. 존재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친구들이니까요.


출처: 윤남노 인스타그램
Q. 맞아요. 동물을 아끼는 마음처럼 애장품 기증도 해주시고, 참 따뜻한 분 같아요. 사실 요리라는 게 나의 시간과 정성을 타인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잖아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때처럼, 누군가에게 마음을 베풀고 나누었을 때 “아, 참 좋다” 하고 느꼈던 특별한 순간이 있으신가요?
A. 나눔에 대해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어요.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방송 활동을 시작하고 생전 처음 받은 출연료를 기부했던 일입니다. 그날 고생한 동료들에게 밥과 책을 선물하고 수익이 조금 남았는데, 우연히 안락사 직전의 유기견 구조 영상을 보게 됐어요. 망설임 없이 구조 단체에 연락해 그날 번 돈을 전부 보냈습니다. 액수를 떠나서, 돈을 벌어 나를 위해 썼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더라고요. 나중에 그 강아지가 구조되어 해외 입양까지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손님이 제 요리를 먹고 행복해할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짜릿한 울림을 느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제가 계속 나눔을 실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Q.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셰프님에게도 치열하고 외로운 시간들이 있으셨을 텐데요. 포기하고 싶던 순간, 누군가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나 작은 친절 덕분에 “그래도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 하고 힘을 얻으셨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A. 저는 제 능력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머니가 암 판정을 받으시고 나온 진단비로 저를 요리학원에 보내주셨거든요. 그 돈의 무게를 아니까 남들처럼 대충 다닐 수가 없었어요. ‘소금’과 ‘설탕’ 두 가지 재료에 미친 듯이 파고들었던 것도 그 절박함 때문이었죠. 학창 시절부터 저를 위해 헌신해 준 형, 제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 해봐라”라며 곁을 지켜준 동료들… 100명이 등을 돌려도 제 곁에 남아준 한두 사람의 믿음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Q. 위스타트 아이들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지금 힘들게 공부하거나 꿈을 쫒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저도 한때는 유학을 못 가서 인생이 망한 줄 알았던 적이 있어요. 친구들이 런던, 도쿄, 시드니로 떠날 때 저는 돈이 없어 못 갔거든요. ‘출발선’이 다르다는 박탈감 때문에 괴로웠죠. 그때 어른들이 하는 “묵묵히 버텨라”라는 말이 제일 싫었어요. 당장 힘든 아이들에게 무조건 버티라는 건 해결책이 아니니까요. 대신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천천히 가더라도, 네가 하고 싶은 걸 저버리지는 마.” 상황이 안 돼서 조금 돌아갈 수도 있고, 남들보다 느릴 수도 있어요. 저도 호주에 가고 싶어서 단돈 30만 원 들고 무작정 떠났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끈만 놓지 않는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아요. 자꾸 마음속에 아른거리는 꿈이 있다면, 늦더라도 꼭 도전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기분 좋은 상상을 한번 해볼게요. 훗날 우리 위스타트 아이들이 “셰프님 밥 먹고 싶어요!” 하고 식당에 놀러 온다면, 셰프님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메뉴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요리사니까, 제 고집보다는 아이들에게 먼저 물어볼래요. “너 뭐 먹고 싶니?” 라고요. 평소에 먹고 싶었지만 비싸서, 혹은 기회가 없어서 못 먹었던 게 있다면 무엇이든 최고급 재료로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게 떡볶이든, 회덮밥이든 아이가 가장 원하는 바로 그 음식을 대접해서 “아, 내가 정말 귀한 대접을 받았구나” 하는 따뜻한 기억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